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책] 끝없는 이야기 - 환타지엔에도 수학이!


제목: 끝없는 이야기
저자: 미하엘 엔데
출판사: 비룡소

지금 구할 수 있는 것은 비룡소에서 나온 '끝없는 이야기' 라는 제목의 번역판이지만 내가 읽은 것은 오래 전에 나온 '네버엔딩스토리'라는 제목의 번역판이다. 더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내가 읽은 쪽이라고 생각된다. 그 번역판에서는 독일어로 된 고유명사(?)들의 발음을 의도적으로 바꾸어 옮기기도 했는데, 그래서 아래에 쓴 이름들은 원작이나 비룡소판의 이름들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였다. 그 자체가 하나의 바위산인 생물 피욜룬하츨그나 거대한 거북 몰라를 비롯한 수많은 환타지엔(환상세계)의 생물(괴물?)들, 엘펜바인 탑, 남쪽 계시소, 천의 문을 가진 사원, 안개의 바다 스카이단 등 환타지엔 안의 장소들, 이야기로 만들어진 환타지엔이 사람들이 더 이상 이야기를 짓지 않아 없어져 간다든가, 이야기를 지어낼 때마다 거기에 등장하는 것들이 환타지엔에 '이미 있던 것'으로 존재하게 된다든가 하는 아이디어... 나같으면 이런 수많은 생물이나 장소의 이름을 짓는 것만 해도 큰 일일 텐데, 작가는 하나하나 자세히도 묘사해 놓았다. 그 상상력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쉴새없이 등장하며 펼치는 모험 이야기에 나 자신이 바스티안처럼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몰입하게 되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수학적인 개념과 이어지는 아이디어가 등장하는 바람에 더 놀라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이 책의 어떤 부분은 같은 해(1979)에 나온 더글러스 호프슈태터의 고전적인 수학책 <괴델, 에셔, 바흐(Gӧdel, Escher, Bach: Eternal Golden Braid)>의 어떤 부분과 흡사하다. 예를 들어

- 작은 곤충들이 모여서 하나의 생물이 되는 군집자 이글라물은 <괴델 에셔 바흐>에서는 개미집(Aunt Hillary)으로 나타나며, 집합이 각 원소들과는 별도의 성질을 갖는다든가, 각 부분에 간단한 규칙을 적용해 전체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수학적 아이디어와 통한다.

- 이 책의 제목은 '네버엔딩스토리' 인데 이 책 안에서 바스티안이 읽고 있는, 환타지엔을 묘사한 책의 제목도 '네버엔딩스토리'이다. 바스티안이 읽고 있는 그 책 안에 다시 '네버엔딩스토리' 라는 책이 등장하는데, 그 세 권의 책이 사실 모두 같은 책임이 밝혀지고, 자기 안에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이 책은 어느 순간 처음으로 돌아가 바스티안이 '시스템을 붕괴시킬' 때까지 무한히 반복된다. 자기 안에 자기 자신을 포함한다는 아이디어는 수학에서는 (하도 많이 거기에 시달려서) 이제 새로울 것도 없지만 항상 역설을 내포하며 수학이라는 시스템을 붕괴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는 위험한 아이디어이다. <괴델 에셔 바흐>의 주제는 괴델의 불완전성정리인데, 그 증명의 아이디어가 바로 명제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게 만드는 것이며, <괴델 에셔 바흐>에서 그러한 아이디어는 아킬레스와 거북의 난감한 대화의 형태로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게 된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이야기 속의 세계라는 개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이 세상의 누군가가 이야기를 지어내면 등장인물은 환타지엔에 존재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 그 자체의 세계가 있다는 아이디어는 풍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죽었다' 고 쓰면 그 인물은 그 부분에서 죽겠지만 책을 앞뒤로 넘길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책이 존재하는 한 계속 존재하는 것 아닌가? 전설적인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의 한 편에서도 가상현실장치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 장치를 끄면 스스로의 존재가 없어지는 데 대해 걱정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모든 이야기는 그 자체의 세계를 갖고 있고 책은 그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이 이야기이고 우리 자신이 등장인물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라는 존재는 유한하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펼친 이야기는 이 세상이라는 '끝없는 이야기'가 펼쳐져 나가는데 무한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이 '네버엔딩스토리' 인 이유는, 위에서 말한 이유로 끝없이 반복된다는 데에도 있지만 이 책의 많은 장면에서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다른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한다'는 식으로 미루어 둔 수많은 이야기들이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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