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책] 화씨 451 - 책을 태울 때


제목: 화씨 451(Fahrenheit 451)
저자: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박상준 역
출판사: 황금가지

어렸을 때부터 과학서적만 편식한 인간의 한계인가? 이런 책을 이제서야 접하게 된 것이 아쉬우면서, 이제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좀 특이하다. 아이들에게 보여 줄 DVD를 검색하다가 일본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중에 <도서관 전쟁> 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도서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클릭하게 되었다(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고). 그래서 그 애니메이션을 결국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좀 비현실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검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이 통과되고, 강제적인 방법으로라도 검열을 집행할 권한을 가진 기관이 있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예외적으로 도서관 내부에서는 검열을 못하게 되어 있지만 정부 검열기관 및 그에 동조하는 과격한 민간단체가 불접적인 방법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탈취해 가거나 심지어 도서관 자체에 대한 테러를 반복적으로 자행하자(이는 물론 불편한 진실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권력자들이 사주한 것일 것이다.) 이번에는 도서관을 경비하려는 무장 조직(도서대)이 생기고, 그리하여 검열을 원하는 쪽과 그것을 막으려는 쪽이 서로 총질을 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이야기는 한 소녀가 그 도서대에 들어가 겪게 되는 여러 사건들을 희극적 요소를 섞어 가며 그리고 있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심각한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10편짜리 애니메이션인 <도서관 전쟁> 중 한 편에서 어떤 책을 '예언서' 라 부르면서, 그 책을 검열기관에서 혈안이 되어 찾아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극중에서 그 '예언서'의 제목은 언급되지 않지만, 그 책은 미국 작가의 SF로서, 미래 사회에서 책을 불태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실제로 있는 소설이라고 짐작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예언서' 가 <화씨 451>이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곧 주문하여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화씨 451>의 설정이 현대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1951년에 나온 책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책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TV와, 귓속형 라디오(실제의 mp3에 해당)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대화는 무엇을 샀네, 드라마 내용이 어떻네 하는 내용에만 거의 한정되고, 투표를 하지만 그 기준은 외모 같은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고, TV를 국가기관이 통제하여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어가는 그런 일들이 '예언'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집집마다 방화 처리를 하면서 불을 끄기 위한 소방서(firehouse)와 소방수(fireman)는 필요 없어지고 그 이름들은 책을 태우기 위한 기관과 직업을 가리키게 된다. 번역서에는 '소방서'와 '방화서', '소방수'와 '방화수'라는 말이 구별되어 쓰였는데 원어로는 firehouse와 fireman 이 중의적인 뜻을 담았던 것 같다. 제목으로 쓰인 '화씨 451' 은 종이의 발화점(불꽃이 없어도 스스로 점화되는 온도)을 말하는데 섭씨로는 약 233도에 해당한다.

<책 파괴의 세계사>라는 책에서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태운다' 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불온서적'을 남김없이 찾아서 불태우겠다는 발상을 할 정도로 미쳐버린 권력이라면, 불편한 말을 지껄이는 사람의 입을 영원히 막는 것 정도는 우스울지 모른다. 처음에는 아마도 청소년에 유해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책을 태울 것이다. 그 다음에는 위험한 사상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그 다음에는 국가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그 다음에는... 아마도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이유만으로도 책을 태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생각이라는 걸 하다니, 권력을 쥔 정치가나 재벌에게는 그 얼마나 불편한 일이겠는가? <화씨 451>에서도 그와 비슷한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처음에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국가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이슬람교를 희화화했다며 소설을 태워버리고 작가를 죽이려고 했던 일이 있었듯이, 이 책은 이런 사람들이 태우고, 저 책은 또 다른 사람들이 태우고, 그러다가 급기야 국가권력이 개입해 포르노 잡지 등 일부 '위험하지 않은' 책만 빼고 모두 태우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 보니 책을 태웠던 주요한 사건의 목록이라며 진시황의 분서갱유부터 나치가 저지른 분서를 거쳐 2010년 미국방부에서 기밀이 포함됐다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실상을 파헤친 <Operation Dark Heart> 9,500권을 구입해서 태웠다는 증언까지 103개의 사건을 나열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도서관 전쟁> 이나 <화씨 451>에 묘사된 사회는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이 날로 생각이 없어져 가고 있는 지금, 그 생각없음을 먹고 사는 권력자들은 더욱 더 생각없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교사들이야말로 최전선에서 그런 권력자들과 싸워야하는 '도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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