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나의 이야기] 신호등, 그리고 유전자

나는 바른생활 사나이다.
지나다니는 차가 없어도 횡단보도로, 그것도 녹색 불이 들어와야만, 그것도 횡단보도의 오른쪽으로만 건넌다.  하지만 나는 맹목적으로 ‘규칙은 무조건 지켜야한다’ 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느냐를 판단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 왔고, 거기에서 판단의 기준이 나온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해 온 과정을 말하고 싶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가 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7 살 때의 일부터 비교적 일관성 있게 기억하는데) 빨간불일 때 길을 건너면 안 된다든지,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든지 하는 규칙들에 대해 의문 자체가 없었고(있었다면 오싹한 일일 것이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은 아주 ‘나쁜’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벌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사건’ 이 일어났다.

그 때는 지금처럼 게임 같은 것이 있지도 않았고 TV 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친구도 별로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싫어하던 나는 방과 후에는 방에 틀어 박혀 책을 읽는 것이 일과였는데, 집에 있는 책이라고는 과학, 기술, 지리, 역사 등 과목별로 되어 있는 ‘학생 백과사전’ 이 거의 전부였다. 그 중 도덕에 대한 부분은 여러 위인들의 일화를 통해 시간을 지켜야 한다든지(비스마르크), 정직해야 한다든지(워싱턴) 하는 덕목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화들만 재미있게 읽고 정작 거기서 말하는 것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학용품을 산다고 속이고 돈을 타서 과자(그 당시 상당히 인기 있는 과자가 있었던 것 같다) 를 사 먹으려고 할머니(나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께 “100원만” 달라고 했다(액수는 정확하지 않다). 할머니께서 “뭐하게” 라고 물으시는 순간, 책에서 읽었던 ‘정직’ 에 대한 워싱턴의 일화 같은 것들이 떠올랐고,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과자 사 먹게요”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혼나면 혼나지 뭐’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께서 어떻게 대답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때 나는 도덕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생활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때부터 점차 나는 누구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판단에 의해서, 거짓말을 거의 안 하게 되었으며, 규칙 (특히 신호등) 을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착한 어린이’ 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들은 착하지 않았으며 거기에 대해 나는 그저 ‘나쁜 사람들’ 이라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자라면서 나는 과학이나 수학 같은 과목에 관심을 가졌고 과학에 대한 교양서적도 많이 읽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중고등학교 6 년 동안 문학 작품이라고는 ‘죄와 벌’ 딱 한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기간에 읽은 과학 교양서적은 백 권도 넘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그것이 점차 나를 ‘따져 보기 좋아하는’ 학생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과학(수학 포함) 책의 내용이란, 사물에 대해 “왜 그렇지?” “정말 그럴까?”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물음을 가지고 따져 들어가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심지어 딱 한 권의 문학 작품 ‘죄와 벌’ 을 읽을 때도 등장인물 사이의 가족 관계를 따져 수형도를 그려 가며 읽었다).

어쨌든, 따져 보기 좋아하는 학생이 된 내가 ‘사람들이 왜 규칙을 안 지키는가?’ 라는 문제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나쁜 사람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것은 허구다. 사람들은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규칙을 어겨 100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적발될 확률이 1/10 이고 적발되면 200에 해당하는 벌(손해) 을 받는다면 규칙을 어겼을 때 이익의 기댓값이 80이 된다. 이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것이므로 규칙을 어기는 경향이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적발될 확률을 1/2 이상으로 올리거나, 처벌을 강화해 1000 이상에 해당하는 벌을 주도록 하면 규칙을 어겨서 얻는 이익의 기댓값이 음수가 되므로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도둑질한 자는 손목을 자른다’ 식의 가혹한 법률이 왜 생겨났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알게 된 현대적인 진화론이 다시 한 번 나의 사고방식을 바꿔 놓았다. 나는 그 때까지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는 성선설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진화론에 의하면 지금의 생물들(인간 포함)의 다양한 모습과 행동방식은 유전자 사이의 생존 및 번식을 위한 경쟁의 결과이다. 인간의 본성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나 자기의 가까운 친척(공통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게 하는 유전자(하나의 유전자가 아니겠지만)는 그렇게 행동하게 하는 유전자와의 생존경쟁에서 져서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양적 전개 과정에 게임이론이라는 수학이 사용된다.)

이 내용을 알고 나서 다시 ‘사람들이 왜 규칙을 어기는가?’ 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답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 인간 본성에 따르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수십억 년의 생존경쟁을 거치면서 극히 이기적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조금이라도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행동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은 대개 사회 전체에 대해서는 해를 끼치는 행동이 될 것이므로 사회를 이루고 살기 위해서는 그런 행동을 억제하는 규칙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모두 규칙을 지킬 때 나 혼자만 어기는 것은 더더욱 엄청난 이익을 가져온다. 이것을 방치하면 점점 규칙이 무시되어 사회가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있는 여러 종류의 사회는 개인의 이기심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법률)와, 이기적인 인간들을 ‘세뇌’ 시켜 서로 위할 줄 아는 사회적 인간으로 만드는 제도(교육)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본성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하는 것인 만큼 완벽하게 되기는 어려우며 큰 사회일수록 더 어렵다(작은 사회에서는 한 번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엄청난 불이익이 오지만 큰 사회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회생활이란 개인의 이기심과 사회 전체의 공동 이익(공공성)이 충돌하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가 나의 결론이었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는 생각에 비해서 엄청나게 발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바른생활사나이’ 인 것은 규칙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사람들이 규칙을 어기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 나름대로 ‘따져서’ 결론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도 모르고 규칙을 지키라는 강제를 받게 되면 이기적인 본능에 의해 될 수 있으면 규칙을 어기려고 하게 되겠지만 그것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했기 때문에 거기에 즐겁게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나 책으로부터 ‘따져 보는’ 사고방식과 따져 나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이 행동을 만든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물론 아닐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배운 지식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하며, 무엇이 가치 있고 어떤 행동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도 거기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에서 도덕이나 과학, 수학, 역사 같은 것을 왜 배우는가? 단편적인 지식 조각들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수학, 과학, 역사 같은 것을 배워서 그것에 비추어 보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 것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세상을 지금보다 훨씬 좁고 얕게밖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분명하게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알게 모르게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은 지식들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냥 먹고 놀고 자는 인생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문을 갖고 탐구하는(즉 따지는) 인생이 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워서 생각하는 방법, 세상을 보는 방법을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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