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책] 생명의 도약 - 생명이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다

제목: 생명의 도약(Life Ascending: The Ten Great Inventions of Evolution)
지은이: 닉 레인(Nick Lane), 김정은 역
출판사: 글항아리

사실 생명이라는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제대로 밝혀낸 것은 다윈이다. 그 원리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다.

원리는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증거도 수없이 많지만, 구체적인 생명 현상, 예를 들어 광합성이 어떻게 해서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느냐를 설명하는 것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그 숙제를 해 온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들의 핵심을 설명하는 보고서가 여기 있다.

<생명의 도약>의 내용은 부제 그대로 '진화의 10대 발명'이다. 중요한 10가지 생명 현상이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된 과정을 진화라는 사고방식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그동안 과학자들이 알아낸 수많은 화학적, 생리학적, 생태학적 지식들이 동원된다. 이 책의 풍부한 과학적, 철학적 내용은 실제 읽어야만 알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10가지 각각에 대해 최대한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생명 그 자체 - 심해의 알칼리성 열수 분출공의 특이한 화학적 환경에서 아미노산, RNA 같은 유기 분자와 크레브스회로같은 중요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2. DNA - 최초에는 RNA가 유기화학반응의 촉매로 도입되었고 그 후에 복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지금도 일부 바이러스는 RNA로 복제함), 나중에 DNA가 '안정된 설계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3. 광합성 - 세균은 돌연변이와 유전자 수평이동을 통해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 광자의 에너지를 이용, 물을 산화시켜 ATP(생화학적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와, 역시 광자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유기물을 만드는 장치가 먼저 나타났고, 그 두 가지 장치를 모두 갖춘 남조세균(cyanobacteria)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지금과 같은 광합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남조세균은 나중에 다른 세포(진핵세포) 안으로 들어가 엽록체가 되었고, 그로 인해 녹색식물 등의 광합성 생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4. 진핵세포 - 산소호흡을 할 수 있는 세균과, 그 세균의 부산물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고세균(세균과 비슷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종류인 미생물)이 공생하다가 세균이 고세균 안으로 들어가면서 유전체가 섞여서 만들어졌다. 산소호흡을 하던 세균은 세포내 소기관이 되었고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이제 에너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세포는 쓸데없는 DNA가 많아지는 현상이 생겼고, 그런 현상을 통제하기 위해 핵이 생겼다. 또한 동물,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나타나게 된 것도 진핵세포(즉,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세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5. 성 - 진핵세포가 형성되고 두 미생물의 유전체가 섞이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빈번하고 빠른 변이가 일어났고 세포융합과 감수분열(둘 다 세균과 고세균의 생화학적인 절차로 간단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통해 해로운 유전자 조합을 제거하지 않은 종류의 세포들은 멸종했다. 현재 무성생식을 하고 있는 진핵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유성생식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6. 운동 - 세균에서 유래한, 세포의 뼈대를 이루는 액틴과 튜블린에 미오신이 붙어 움직이면서 진핵세포 내에서 분자나 소기관을 이리저리 움직여 주는 '물류' 시스템이 생겼다. 그 액틴과 미오신이 나중에 근육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7. 시각 - 빛을 감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세균이나 고세균 수준에서 이미 빛을 이용하는 장치들은 있었고, 캄브리아기에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몸집이 큰 동물들이 나오게 되어 시각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신경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망막에서 시작해 수정체 등을 갖춘 눈이 되는 것은 진화에서는 쉬운 일이며, 그래서 여러 번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8. 온혈성 - 약 2억 5천만년 전, 페름기의 화산활동으로 시작된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파충류들이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풀 같은 식물밖에 없었는데 식물은 질소 함량이 낮다. 필요한 질소를 섭취하기 위해 식물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탄소 같은 다른 성분은 남아돈다. 이 남아도는 영양소를 그냥 저장하는 방향으로 간 동물은 거대한 공룡이 되었고, 태우는 방향으로 간 동물은 남아도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재빠른 몸놀림과 밤에도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온혈동물이 되었다.

9. 의식 - 감각을 통합하여 관장하는 의식은 함께 흥분해야 할 뉴런들 사이의 연결(시냅스)은 살리고 불필요한 연결을 없애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런 일은 주로 유아기에 이루어지는데, 수많은 뉴런 연결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다. 의식의 존재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 구체적인 진화 과정은 아직 모른다.

10. 죽음 -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있는 DNA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내막의 고전압 때문에 쉽게 손상된다. 손상에 대비해서 복사본이 5개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상은 축적되고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손상되면 미토콘드리아는 분해되고, 그런 식으로 계속되면 세포가, 그리고 개체 전체가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이 죽음이다. 따라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세포(생식세포)는 최대한 미토콘드리아 손상이 적도록 되도록 빨리 만들어져야 하며, 태아가 발생하자마자 곧 생식세포를 만드는 것은 그런 이유다(그러고도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떨어지는 생식세포는 또다시 솎아내어진다). 체세포를 복제하여 만든 다세포 생물(예를 들어 복제양 돌리)의 수명이 짧은 것도, 복제의 원형인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는 이미 상당 기간 DNA 손상을 입은 상태이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