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과학] 기생충

기생충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기생충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회충, 요충과 같이 사람 몸 안에 살면서 양분을 가로채 살아가는 지렁이 비슷하게 생긴 동물일 것이다. 기생충의 ‘충’은 벌레라는 뜻이므로 기생충은 모두 작은 무척추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기생충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생물 또는 무생물일 수 있다(벌레가 아닐 때는 기생생물이나 기생체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어미 새로 하여금 자기의 알을 부화시키고 돌보게 하는데, 다른 새의 노력을 가로채 번식을 하는 것이므로 기생충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또, 식물 중에는 광합성을 하지 않고 근처에 자라는 버섯으로부터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버섯만도 못한’ 것들이 있는데 이 역시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바이러스(독감 등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스스로를 복제할 수 없지만 다른 생물 세포의 복제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기 복제를 한다. 바이러스를 생물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논란이 되지만 회충이 사람에 기생하듯이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에 기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컴퓨터 바이러스는 실체가 없는 소프트웨어일 뿐이지만 다른 프로그램에게 돌아가야 할 메모리 공간과 중앙처리장치 실행 시간을 가로채 자기를 복제하고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므로 기생충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일반적으로 스스로는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시스템에서 유용한 자원을 가로채어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서 살아가는(유지, 확산해가는) 시스템을 기생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생충을 영어로는 parasite 라고 하는데, ‘식객(밥을 얻어먹는 자)’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생충이 이용하는 대상, 즉 ‘숙주’는 일반적으로 기생충의 활동에 의해 해를 입는다. 자기 한 몸을 위해 사용해야 할 영양분이나 자원으로 기생충까지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충의 해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생충이 자기 목적(유지, 확산)을 위해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스스로를 더 잘 확산시키려고 우리 몸으로 하여금 그런 반응을 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물론 바이러스에게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더욱 잘 퍼져 나가 오늘날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콜레라처럼 물을 통해 전염되는 병은 설사나 구토를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광견병의 경우는 더 무섭다. 광견병은 주로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었을 때 침을 통해 전염된다. 그러므로 광견병 바이러스는 침을 많이 흘리게 하는 동시에 화학적으로 ‘뇌를 조작하여’ 다른 동물을 물게 만든다. 보통 면역체계가 1-2주일 안에 광견병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그 짧은 기간을 이용해 자신을 다른 동물로 옮기게 하기 위해 숙주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람의 경우 일단 광견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중추신경(뇌, 척수)의 손상으로 100% 죽게 된다(그러나 감염된 후에라도 예방주사를 맞으면, 바이러스가 중추신경에 도달하기 전에 퇴치할 수 있다).

기생충들의 ‘악랄한’ 행태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반고환충의 유충은 송사리의 뇌 바깥에 기생하다가 그 송사리가 새에 잡아먹힐 때 새의 내장으로 들어가 성충이 된다. 따라서 송사리가 새에게 잘 잡아먹혀 줄수록 진반고환충이 더 잘 번식하게 된다. 그래서 유충은 송사리의 뇌 근처에서 화학물질을 분비, 송사리가 수면 근처에서 몸을 뒤집어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하는 경향을 보이도록 한다. 그 결과 송사리가 잡아먹힐 확률은 30배로 늘어나고 진반고환충이 더 쉽게 새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의 입장에서는 진반고환충 덕분에 송사리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 셈인데, 이것은 그 지역 생태계의 균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 하면 게에 기생하는 소낭충은 아예 숙주를 자신에게 봉사하는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소낭충은 게의 배 부분에 자리잡고 게의 살 속으로 촉수 비슷한 것을 뻗어 양분을 빨아들이는데, 숙주가 된 게는 소낭충의 화학적 조작에 의해 번식 능력이 없어지고 오로지 소낭충을 보호하고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행동만 하게 된다. 이쯤 되면 ‘식객’이 집을 차지해 버린 셈이다. 암세포는 주인이었던 인체를 배신하고 그 시스템을 자기 자신의 유지, 확산을 위해 사용하여 마구 번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숙주인 인체에 커다란 해를 끼치는 섬뜩한 기생충이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생충의 생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칼 짐머(Carl Zimmer)의 책 「기생충 제국」(이석인 옮김, 도서출판 궁리, 2004)을 참고하기 바란다.

교묘한 방법으로 다른 생물의 몸 안으로 침입하고, 숙주의 면역체계를 바보로 만들며, 뇌를 화학적으로 조작하는 등의 창의적인, 어찌 보면 처절한 생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특이한 이웃에 대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기생충은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잃어버린 퇴화된 생명체도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온 사악한 괴물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적응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서 혹시 사람이 기생충과 비교되거나, 기생충이 사람과 비교되더라도 그것은 사람이나 기생충을 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이므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사실 기생충은 결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시스템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만들었을 지하철 광고판 앞에 살짝 끼워 넣은 조잡한 전단지를 보라. 광고주와 광고 기획자, 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의 노력에 살짝 편승하는 그 기생충스러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속도로가 막힐 때 갓길을 질주하는 차들은 어떤가? 공공의 안전과 효율을 위해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고속도로라는 시스템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솜씨가 기생충을 닮았다. 우리 사회를 안전하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세금을 거두는 것인데 사회에서 받을 혜택은 모두 받으면서 그 세금을 가로채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탈세범이나 탐관오리들, 불법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의 ‘면역체계’인 수사기관이나 세무기관을 구워삶아버리는 일부 재벌 기업들, 공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하면서 사회를 지배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 앞에서 소개한 기생충들 중에서 그들과 흡사하게 살아가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기생충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므로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그런 일들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데 기생충에 대한 지식이 쓸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교육이라는 시스템은 어떨까? 여기서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법에 의해 통제되는 학교교육, 흔히 공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금이나 고속도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교육은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공교육의 목적은 지식과 가치관을 다음 세대로 전달함으로써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동시에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르치는 수학이라는 학문은 수, 방정식, 함수, 도형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연구하는 것인데, 추상적인 개념은 많은 구체적인 것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 수의 계산 방법을 알아 놓으면 공깃돌의 개수를 헤아리는 데서부터 우주선을 설계하는 일까지 온갖 일에 사용할 수 있다) 수학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따라서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데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둑 동호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바둑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하듯이, 기초가 되는 수학적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그 진정한 일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공교육은 자기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소낭충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게처럼 엉망인 상태이다. 기본적으로 교육은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인데, 그러기는커녕 사회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에 올라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교육의 방향을 엉뚱하게 틀어버리는 진반고환충이나 소낭충같은 인간들이 교육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생충은 아마도 다음에 나열한 자들일 것이다.

- 권력(득표)을 위해 포퓰리즘적인 교육정책(예:고교평준화 해체, 교원평가)을 밀어붙이는 정치인
- 자기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특혜를 요구하고 반칙을 일삼는 일부 권력자들
- 공공 예산 빼먹기 바쁜 일부 교장, 행정실장, 업자들(그 유명한, 관료+업자 카르텔)
- 손님을 끌기 위해 공교육 불신을 조장하는 사교육 업자들
- 무능, 부패, 나태하여 교육을 오히려 방해하면서 월급만 챙기는 일부 교직원, 교육공무원들

기생충이 생기는 것을 그 기생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기생충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도록 면역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존의 기생충을 하나씩 잡아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날이 올까 싶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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