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책] 국가란 무엇인가 - 국가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제목: 국가란 무엇인가
저자: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학교 일로 '계획서' 라는 것을 많이 쓰게 되는데 계획서의 맨 앞에 '목적'을 밝히는 것은 그 사업(예를 들어 교육과정 운영, 부진학생지도 등)을 '왜' 하는지가 그 이후의 모든 것(누가, 언제, 어떻게 등)을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철학이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철학이란, 정치를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에 답해야 한다. 사실 '정치를 왜 하는가' 와 '정치란 무엇인가' 는 같은 질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에 답함으로써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따라올 것이다.

나는 원래 정치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정치란 정치가들이 하는 전문 분야로, 나는 몰라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국가에도 정치가 있지만, 가정에도 정치가 있었고, 학교에도, 수학교사모임에도 정치가 있었다. 작은 집단이건 큰 집단이건,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할 경우 필연적으로 그 집단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가지며, 어떤 식으로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정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세금을 얼마나 걷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어떤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국가' 에 있다. 국가는 폭력(군대와 경찰)으로 지구의 일부를 점령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결정을 강제한다. 몇몇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몰라라 하기에는, 국가의 결정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와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 갈래의 생각인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한 다음,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자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 워낙 담담하게 해설해 놓아, 평소 내가 '수구기득권세력' 이라 부르며 자기가 가진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면서 약자를 수탈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라고 경멸했던 사람들도 어쩌면 국가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 공존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다. 비록 현재 정권(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할 권리)을 잡고 있는 국가주의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국가안보', '국익'이 우선이기 때문인 것이다. 반면 나에게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로부터 정권을 빼앗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우선순위를 바꾸기 위해서(즉,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이지, 그들이 나쁜 놈들이라서가 아니다(물론, 많은 '나쁜 놈들'이 이 국가주의자들이 만든 환경에 기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이다. 말하자면, '적'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유시민처럼 자유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국가안보나 국익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자(파시스트)는 절대로 아니고, 국가가 자본가들의 집행위원회일 뿐이므로 국가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개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일정한(그러나 제한되고 통제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인인 저자 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국가라는 것을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에 차례로 서 보고, 자신의 것과 다른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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