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책] 정자전쟁 -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 탐구

제목: 정자 전쟁(Sperm Wars)
저자: 로빈 베이커
출판사: 이학사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나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현상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성교가 번식을 위한 활동이라면, 임신 가능성에 관계 없이 수시로 성교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라서? 하지만 다른 동물들 중에도 이런 경우는 많다.

이 책은 인간의 성에 관련된 행동 방식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간다. 거기에는 유전자 수준, 세포(정자, 난자) 수준, 사회적 수준의 원인들이 얽혀 있고, 이 모든 현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진화' 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책은 37개의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먼저 성적인 행동의 전형적인 예를 말해 주는 가상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그 이야기의 상황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 가상의 이야기는 거의 "야설" 처럼 보이지만 과장이나 왜곡 없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과학적인 설명 부분은 각 <장면>에 대해 일관성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이론의 핵심에 '정자전쟁' 이라는 개념이 있다. 정자전쟁은 한 여자의 몸 안에 짧은 간격을 두고 여러 남자의 정자가 들어왔을 때, 서로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긴 편의 정자가 난자를 수태시킨다(가임기인 경우). 인구의 4%가 정자전쟁을 거쳐서 수태되어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별것 아닌 수치처럼 보이지만, 정자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남자의 행동방식, 그리고 좀 더 경쟁력 있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정자전쟁을 적절히 이용하는 여자의 행동방식은 곧바로 더 많은, 더 경쟁력 있는 후손을 만들게 되고(여기서 경쟁력이란 유전자를 더 널리 퍼뜨린다는 의미), 그 후손들 역시 부모에게서 그러한 형질을 물려받을 확률이 크다. 그리하여 그러한 형질은 계속 퍼져 나가고, 사실상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성에 관련된 행동을 정자전쟁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적인 행동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어른들의 사회생활에는 물론, 학생들의 성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런 이해를 돕는 좋은 책으로 '털없는 원숭이'를 꼽았는데, 이 책은 좀 더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생물학적(분자생물학적, 생리학적)인 분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물질의 성질을 정말로 이해하는 데 원자 수준의 설명이 필요하듯이, 그냥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인간의 행동은 너무 복잡하고, 무규칙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자전쟁'이나 'DNA' 처럼 상식만 가지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이 그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그 모든 현상이 일관성 있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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