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사회] 마케팅

학문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케팅’라는 용어가 자본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 중의 하나이다. 고등학교 때 상업 과목을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마케팅에 대해 갖고 있던 개념은 그것이 ‘광고’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였다. 고등학교의 사회 과목과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에서는 워낙 기본적인 이론만을 공부하다보니 마케팅에 대해서는 배울 기회가 없었고, 따라서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마케팅에 대해 애매한 개념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기회에 경영학과를 다니던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신발 회사 직원이 오지에 있는 마을에 다녀와서 ‘그 곳에서는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으니 우리 회사가 진출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고, ‘그 곳에서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고, 따라서 우리 회사가 진출하면 경쟁 상대 없이 독점적으로 신발을 팔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다. 앞의 경우처럼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하는 것이 비즈니스라면, 뒤의 경우처럼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마케팅이다.
그 말은 내 생각 속에서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사회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얼마 안 되는) 것들이 논리적으로 자리를 찾아갔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가 ‘필요’와 같은 말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수요는 기꺼이 돈을 내고 구입하려는 ‘충동’이다. 이것은 그것을 구입하여 얻는 유용성(효용)과는 다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도, 말하자면 사기를 쳐서라도 사게 만들면 수요가 창출된다. 반면 매우 필요한 물건이라도 돈이 없어서 못 살 형편이면 수요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 마케팅을 비판적으로 정의하자면, ‘필요 없는 물건(또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활동’, 직설적으로 말해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활동’이라고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백과사전 같은 곳에는 ‘고객의 필요를 파악하고 고객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필요성을 알리는 등의 활동’ 이라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하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앞의 ‘비판적’인 정의가 더 유용한 것 같다.

자본주의의 폐해 중에서 상당한 부분은 이 마케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품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필요보다 더 많이 사도록 만드는 것, 이것은 지금 당연한 듯 행해지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기업의 본질을 망각한 행위다.  자기들의 수익을 위해 손님들의 윤택한 삶을 희생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들의 마케팅을 규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소비자들을 ‘속이는(우롱하는)’ 행태로 가기 마련이고, 그러면 필요 없는 것을 잔뜩 사들이느라고 돈을 쓰고 정작 필요한 곳에 쓸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이것은 '착취'인 것이다.

이런 착취 행태는 우리 사회에서 흔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자가용 승용차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자동차 회사의 마케팅의 결과로 이렇게 된 것인가? 정말 어린 학생들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한 달에 수만 원의 요금을 내며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평균 14개월마다 휴대전화기를 새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는 것일까? 많은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데 담배 회사의 마케팅 없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화장품은? 아웃도어 의류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마케팅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서운 괴물인 것만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교육이 상품이 되어 마케팅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내고라도 대학에 꼭 가야만 할 것 같고, 그러기 위해 모든 여가시간과 돈을 쏟아 부어서 입시학원에 다녀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상품’에 대한 마케팅이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윤을 위해 이용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정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하여 돈을 쓰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된다면, 담배는 중독자 치료용으로만, 자가용 승용차는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에서만 사용되고, 대학은 학문을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만, 학원은 학교 교육을 보충하기 위해서만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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