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교육]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아는 어떤 분이 청와대에 가서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 이라는 것에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있으니 의견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내놓은 정책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수학’,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수학’, ‘더불어 함께하는 수학’ 이라는 목표를 걸고 입시제도, 교육과정을 고치고 학교에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런 식으로 뭔가 '하는 척'만 하면서 학교를, 결국 일선 교사들을 힘들게 하고 학생에게는 혼란을 가중시키는 졸속정책들이 답답해서 아래와 같은 글을 보냈다. 그 자리에서 꺼낼 만한 얘기가 아니어서 아무 역할을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교육에 대한 나의 평소 생각을 요약한 글이기에 여기에 남긴다. 


“훌륭한 교육은 배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교육환경에서 이루어진다.”
- 그레고리 커터니어스, 전 하버드의대 강의병원 교수

라는 말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학이건 다른 과목이건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배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수 없는 교육환경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사, 학부모, 학생은 시험에서 남보다 앞서는 것을 목적으로 공부하고 또 가르치고 있으며 그 원인은 교육 내부에 있기보다 사회 전체에 있습니다.

배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수학’,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수학’, ‘더불어 함께하는 수학’ 같은 것들은 굳이 정부에서 노력하지 않아도 수학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움 자체가 목적인데, 더 잘 가르치고 더 잘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금처럼 시험에서 남보다 앞서는 것이 목적인 교육환경을 그대로 두고 더 좋은 수학교육을 한다며 시험제도를 고치고, 교과서를 바꾸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은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에게 또 한 번의 혼란과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과목간 통합교수학습 장려’는, 입시에 반영된다면 또 하나의 문제유형이 될 뿐이고,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유명무실해질 것입니다. 대학입시라는 경쟁 대열에서 일찌감치 탈락되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지겨운 학교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가는 학생들에게 수학 시간에 G-Learning을 도입하면, Learning 은 십리 밖으로 날아가고 G(Game)만 가지고 시간을 때울 뿐일 것입니다.

훌륭한 교육까지도 아니고 ‘정상적인’ 교육만이라도 이루어지려면 대학 진학 여부에 따라, 또한 대학을 나왔어도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정해지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해야만 합니다. 이 문제는 결코 중고등학교 정책의 문제가 아니며 결국 대학 정책(나아가서는 사회 정책)의 문제입니다. 이제 교육 문제를 해결한다며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나 교육제도를 고치는 척하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교사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방식에도 한계가 왔습니다. 문제가 학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대다수의 국민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학 정책 및 사회 정책 개혁에 나설 때에만 중고등학교 교육 문제도 해결됩니다. 물론 기존 환경에서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특히 사학재벌)의 반발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축적된 교육정책의 실패를 만회하려면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정도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순서로)

(1) 학력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의 생활비 및 의료비, 주거비, 자녀 교육비가 보장되는 사회복지제도 구축
(2) 대학 교육을 공공자본으로 간주, 예산을 투입하여 등록금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학을 민주적 통제 아래에 둠(정부 감사, 이해당사자에 의한 대학 운영 협의체 제도)
(3) 대학 정원을 감축, 국민의 50% (더 바람직하게는 30%) 정도만이 대학에 진학하도록 함 – 사회적 자원 낭비와 학력 인플레이션을 방지함. 한편 대학을 나오지 않은 국민이 많아질수록 그들을 위한 일자리도 많아지고 기업의 학력차별도 약해지며 그들을 위한 정책도 나오게 됨.
(4)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소위 명문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의 구별을 없앰. 예를 들어 대학 입학생을 공동모집하여 계열별로 수능에서 일정 점수 이상 받은 학생은 합격시키고 가까운 대학에 진학(대학 평준화). 등록금은 평준화 또는 무상화.

‘수학교육선진화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자리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는 논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 당국에서 계획서를 쓰고 예산을 집행하고, 학교에서 그에 따른다 해도 모든 것을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버리는 교육환경입니다. 학생, 학부모, 심지어 교사와 교육 당국의 공무원들조차 ‘서울대 명수’ 세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수학’,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배우는 수학’, ‘더불어 함께하는 수학’ 같은 구호들이야말로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수십 년간 보아 왔듯이, 이런 교육환경은 중고등학교 교육정책을 바꾸고 교사들이 노력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국가 전체 수준에서 교육환경을 개선하여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력은 국가에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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