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책] 시간을 파는 남자 - 자유를 찾아서

제목: 시간을 파는 남자(El vendedor de tiempo)
저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Fernando Trias de Bes)
출판사: 21세기북스

5분에 1.99달러...
1.99달러를 주고 산 빈 통을 열면 언제건 5분의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돈을 주고 구입한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고용주들이 그만큼 급료를 깎을 수는 있겠지만, 5분에 해당하는 급료가 보잘것 없다보니 그것도 소용 없다.

시간을 판다고 말은 하지만 주인공인 TC('보통 남자') 가 실제로 파는 것은 '자유' 다.  5분 동안의 자유를 1.99달러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포기하고 자유를 구입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시간(자유)이 없기 때문에, 5분에 해당하는 급료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5분을 구입한다.

어처구니없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이 사회,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다.  나는 이처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없지만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많다.
말하자면, "근무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덜 받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에게 적당한 노동의 양은 '반일 노동' 그러니까 하루 4시간 정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정도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말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리트윗'하고 다녔다.  지금의 반만 일하고, 월급을 반으로 줄인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그래서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월급을 지금의 반만 받는다면 살아갈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지금의 상태에서 내 월급만 반으로 줄어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회 전체가 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돈은 적고 시간이 많다면? 차 안 사고 웬만하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않을까?, 외식 덜 하고 대신 집에서 요리해 먹지 않을까?  비행기 여행 덜 다니고 기차여행을 다니지 않을까?

그러면 소비가 줄어들어 산업이 망한다는 반론도 있다.  그것도 과연 그럴까?  월급이 적은 대신 실업자가 없어지면 그들도 적당히 소비를 할 것 아닌가?  보석이나 고가 핸드백, 휴대폰, 자동차 등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은 소비가 줄겠지만 식품 같은 생활 필수품은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산업이 그쪽으로 발달할 것이다.  사실, 노동시간이 반으로 준다고 해서 월급이 반으로 줄 것 같지도 않다(필요한 노동자의 수가 많아지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주주의 이윤이 줄어들겠지.

내가 '반일 노동'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사였다.  교사 월급이 반으로 줄면, 정말 살아갈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차 굴리고, 외식하고, 비행기 여행 다니고, 아이들 사교육 시키고, 비싼 아파트를 먼저 사고 대출금을 갚고 하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는가?  낮은 월급과 걸핏하면 당하는 해고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보다, 내가 차 못 굴리고 아이들 사교육 못 시키는 고통을 더 크게 생각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사회의 체제 그 자체일 것이다.
체제란 지배-피지배 관계를 듣기 좋게 부르는 이름일 따름이다.
고대, 중세에는 지배자들이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이라고 속여서 그 '체제'를 유지했을지 모르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일자리의 개수를 줄이고 그것을 못 얻으면 큰 고통을 받게 만들어 '실업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것 같다.  직장이 있어도 장시간 노동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직장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유지되지 못하는 이런 사회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당연히 '지배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99%'의 피지배자를 '노예'로 만들어 최대한 이윤을 짜내려는 자들이 만든 체제인 것이다.

<시간을 파는 남자>에서 사람들은 월급을 덜 받고 자유를 얻는데 기꺼이 동참하고, 결국 '체제'는 붕괴한다.  현실에서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데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은 자기들의 천국인 현 체제가 흔들릴 것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불평등', '착취', '노예'
아직도 이런 말들로 사회를 묘사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려면 자유를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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