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책] 크로마뇽 -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들

제목: 크로마뇽(Cro-Magnon: How the Ice Age Gave Birth to the First Modern Humans)
지은이: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
출판사: 더숲

<지구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Earth)>라는 영화에는 크로마뇽인이 어떤 이유로 현대까지 살아있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우리도 크로마뇽인이다.  비록 우리가 '크로마뇽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주로 수만 년 전에 동굴이나 허술한 천막에서 살면서 사냥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일컫지만, 그들은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신체 구조와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크로마뇽인 아기를 현대에 데려와서 키우면 현대인과 다를 바 없이 잘 살 것이다.  또한, 지금도 지구상에는 수만 년 전과 별 다름 없이 살고 있는 '크로마뇽인'들이 있다.  '크로마뇽인'과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축적된 지식과 사회제도, 문화 같은 것이 우리에게 그들과 다른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이 책(<크로마뇽>)에서는 크로마뇽인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은 사냥을 해서 살아갔으며, 빙하기에도 살던 곳에서 쉽사리 물러나지 않고 순록 같은 동물을 사냥하며 살았다.  다른 종인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살아가기도 했지만, 네안데르탈인은 결국 멸종했고 크로마뇽인만 살아남았다.

이 책에서는 크로마뇽인들의 기술적, 예술적인 능력이 현대인과 다름 없었다는 증거를 많이 볼 수 있다.  나에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과학기술, 그들이 쓰던 도구들이다.  나는 '뗀석기'라는 것이 그냥 돌을 아무렇게나 깨뜨려 모양에 맞게 이용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계획적으로 만든 도구였으며, 뗀석기의 좋은 재료가 되는 돌을 찾기 위해 매우 멀리까지 가거나, '무역'을 하기도 했다.  정교한 석기를 써서 뼈나 뿔을 쪼개고 다듬어 화살촉이나 낚싯바늘, 심지어 옷을 만드는, 귀가 있는 바늘도 만들었다.  이 책에 의하면 크로마뇽인을 번영하게 해 준 두 개의 기술 혁신은 바로 '투창기'와 '귀가 있는 바늘'이다.

투창기는 멀리서도 창을 던질 수 있게 해서 사냥 도중에 죽거나 중상을 입는 사람들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매머드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멸종한 것도 투창기로 무장한 인간들의 '대량학살' 때문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나타나고 천년 남짓한 기간에 남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대형 동물이 모두 사라졌고, 이들이 내뱉는, 강력한 온실효과를 갖는 메탄이 감소하여 빙하기가 왔다는 말도 있다.

귀가 있는 바늘은 가죽으로 만든 옷을 몸에 맞게 만들어 여러 겹으로 겹쳐 입을 수 있게 함으로써 추운 날씨에도 활동할 수 있게 했고, 이 때문에 크로마뇽인의 거주 지역은 매우 넓어졌다.

우리 집에 <아이스 에이지>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DVD가 있는데, 거기서는 이미 멸종한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매머드, 검치호랑이, 땅나무늘보(megalonyx), 그리고 '인간'이다. DVD 해설에서는 이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이라고(따라서 역시 멸종한 동물이라고) 나오지만, 이 책에서 얻은 정보에 비추어 옷이나 도구, 장신구, 그리고 벽화를 그리는 등의 생활 양식을 가지고 판단해 보건대 영화 속의 인간은 크로마뇽인에 가깝다.

크로마뇽인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깝고,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실 우리의 행동양식은 협동해서 사냥을 하던 크로마뇽인에게 더 적합한 것이 많이 있다.  미술도 그들의 것에 뿌리를 둔 것은 명확하다.  남아있지 않아서 그렇지 음악도 그럴 것이다.  크로마뇽인이 사용하던 창과 투창기가 발달해 화살과 활이, 포탄과 대포가, 총알과 총이 만들어진 것이고,  현대의 바늘이나 낚싯바늘 같은 것은 재료만 바뀌었지 크로마뇽인이 사용한 것에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고고학 역시 현재의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죽은 것을 파헤쳐 기록하는 활동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 시절에도 기술혁신이 있었고, 문화의 전파가 있었고, 환경파괴도 있었으며, 그들도 우리처럼 낙서도 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기도 했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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