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8일 금요일

[과학] 인간은 왜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나?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일 뿐이다'
이것이 데스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가 1967년에 쓴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의 기본 명제이다.  우리말의 '원숭이'는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쓴 것 같고 Ape 는 '유인원'을 말한다.  사람은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과 같이 생물 분류상 하나의 '과'를 이룬다(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특히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람과 더욱 가까운 친척 종(정확히는 '속')이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 이런 유인원들과도 사람은 너무나 다른 외형과 행동방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털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으며, 나무 위가 아닌 평지에서 생활하며, 상당부분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등 성적인 행동방식도 많이 다르다.  또한 높은 지능, 복잡한 언어, 정교한 손재주를 바탕으로 다른 유인원이 흉내도 못 낼 정도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침팬지나 보노보와는 전혀 달라 보인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특이하게 만들었나?  이런 의문은 나에게 매우 흥미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내가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를 정리해 본다.


1. 직접적인 이유: 나무에서 내려왔기 때문

다른 유인원은 대개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과일 같은 것을 주식으로 한다.  한 곳에서 먹이가 부족해지면 이동한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 맹수의 공격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에 비해 땅 위에서 생활하는 것은 먹이를 구하는 것도, 다른 동물들로부터 자신이나 무리를 보호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나무에서 살던 유인원이 불가피하게 나무가 없는 땅 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면 어떨까?  유인원이 평지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으로 인간의 행동 중 많은 것이 설명된다.  숲이 아닌 평지(초원이나 사바나)에서는 일단 몸을 보호하기 쉬운 동굴 같은 곳을 근거지로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에 따라 이동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유인원 무리는 사냥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 사실이 중요해진다.  사냥의 특성상 무리가 협력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직립보행하면서 손에 도구(무기)를 쥐는 것도 역시 사냥에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 중 특히 남자들은 축구나 골프 등 초원에서 달리면서 뭔가를 쫓아가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  이것은 사냥할 때 쾌감을 느끼도록 뇌가 프로그램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래야 사냥을 열심히 해서 결과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므로).  지금처럼 거대한 문명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인간의 특성, 즉 다른 유인원에 비해 공격성이 현저히 낮고 서로 협력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 역시 원래는 사냥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일부일처제이다.  집단적으로 사냥을 하는 동물의 경우 한 쌍의 암수 사이의 평생 가는 관계와 공동 육아, 즉 일부일처제가 나타나는 일이 많다.  우두머리가 암컷을 독차지하는 일반적인 유인원의 행태는 사냥을 위해서 모든 수컷이 협력해야 하는 생존 조건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게 된 이후 대부분이 문명 사회에 살고 있다.  농사는 수만 년, 도시 생활은 수천 년밖에 안 됐으므로 인류의 본능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수컷(남자)끼리의 서열 다툼, 강한 수컷이 많은 암컷(여자)을 거느리려는 경향 등 유인원의 본능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한편으로 대부분의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한 가족 제도를 갖고 있음을 볼 때 유인원의 본능을 사회적 제도로써 억누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나무에서 내려온 뒤, 집단적으로 사냥을 하던 시기에 생겨난 심리적 경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왜 나무에서 내려왔나?

그렇다면 나무에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유인원이 평지에서 살려면 삶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소규모 유인원 집단이 숲에서 나와서 살아가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자식 세대쯤 전멸하거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게 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인가?

갑작스런 기후 변화로 광대한 지역의 숲이 급격히 사라진 경우라면 어떨까?  그러면 거기 살던 수많은 유인원이 어디로 이동하지 못한 채 대부분 죽게 될 것이다.  그대로 멸종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평지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살아남아서 자손을 남길 수 있었다면, 점점 평지 생활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종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가 갑작스럽지 않더라도, 산맥이나 큰 강 등으로 인해 지리적으로 분리된 지역에 고립된 채 장기간에 걸쳐 숲이 서서히 없어진다면, 역시 평지에 적응한 종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나타난 시기를 전후하여 아프리카에서는 이러한 환경 변화가 실제로 있었다.  약 300만년 전, 떨어져 있던 남북 아메리카가 육지(지금의 파나마 지협)로 연결되면서 대서양에서 남북 아메리카 사이를 흘러 태평양으로 가던 해류가 막혀 지구 전체적으로 해류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이로 인해 북극,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후가 변했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는 건조해져서 숲이 줄어들고, 그런 환경 변화가 유인원 일부를 평지에 적응하여 진화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3. 왜 지능이 발달했나?

나무에서 내려와 평지에서 사냥을 하게 된 것으로 인간의 모든 특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능이 쓸데없이(?) 높고, 추상적인 내용을 표현,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림, 음악, 이야기 등 생활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틀로는 설명이 곤란한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물에게는 '생존' 이외에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번식'이다.

사실 번식은 유전자 입장에서는 역시 생존이다.  유전자가 계속 '생존'하려면 개체(식물이나 동물 자체)가 일단 생존을 하고, 번식까지 성공해야 한다.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함께 번식이라는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  현대 진화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지능이나 언어, 예술 등이 등장한 이유는 번식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수컷 공작새의 꼬리는 그야말로 쓸데없이 길고 화려해서 생존에 커다란 방해가 될 지경이다.  하지만 번식을 위해서 필요하다.  암컷이 그 꼬리를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왜 그런 쓸데없는 형질을 가진 수컷을 선택하는가?  처음 시작은 아마도 긴 꼬리를 갖고 있다는 불리함에도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것이 다른 면에서 좋은 형질을 갖고 있다는 표시가 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우연히 어떤 작은 집단의 암컷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이런 경향이 시작되면 양(+)의 피드백이 되어 멈추기 어렵다.  긴 꼬리의 수컷과, 그런 수컷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암컷이 어떤 집단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꼬리가 짧은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잘 받지 못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어렵다.  짧은 꼬리의 수컷을 선택하는 암컷 역시, 그 새끼들 중 수컷은 꼬리가 짧을 것이고, 새끼들 중 암컷도 짝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서 번식에 불리해지게 된다.  이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수컷의 꼬리가 길어지고, 그 중에서도 더 긴 꼬리를 갖게 되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하는 식으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꼬리가 점점 길어지게 되며, 꼬리가 생존에 방해가 되어 번식의 이점을 상쇄할 지경이 되어서야 그런 경향이 멈추게 된다.

생존에 필요 없어 보이는 인간의 형질들 역시 그런 것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높은 지능을 과시하는 구애 행동으로서 복잡한 언어나 그림 같은 것이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런 것이 여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그 방향으로 급속한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공작새의 꼬리 같은 경우는 암컷에게는 소용이 없고 생존에 불리함만 주기 때문에 암컷에게서는 해당 유전자가 억제되어 형질이 나타나지 않지만, 인간의 경우 두뇌의 발달은 여자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여자에게서도 그 유전자가 억제되지 않고 발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경우 초기부터 사회적 생활 방식 등의 원인으로 인해 여자가 일방적으로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성 선택에 의해 발달된 형질인데 왜 남녀에게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사모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를 했다거나 그림을 그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우스개로만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는 것도, 말을 유창하게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는 식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갖고 공부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각자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공부를 하고 대화가 즐거워서, 남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좋아서 유머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무슨 의도를 갖고 물건을 입으로 빨고 하는 것이 아니라도 결과적으로 그 행동이 면역성을 높여 생존을 돕듯이, 인간의 '인간다운' 행동들은 아마도 (우리도 모르게)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위해 생겨났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이상한' 신체와 행동방식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도 이제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이 압도적인 지능과 문화를 통해 수많은 다른 생물들을 멸종시키는 데까지 가고 있는 것은 무슨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우연이 겹쳐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인류처럼, 혹은 인류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는 종이 생겨나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느니 하는 오만함을 누그러뜨리는 데 이런 지식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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