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9일 토요일

[교육] 경쟁과 경쟁력

흔히 경쟁을 유발하면 경쟁력이 생긴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지 잠시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무제한의 경쟁,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경쟁력이 강한 쪽이 승리한다. 그 다음은? 한번 승리한 쪽은 계속 승리한다. 아니 경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승자가 ‘독식’을 할 뿐이다. 이와 같이 아무 제약 없는 경쟁은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추기지 않아도 경쟁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그것에 제동을 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과당 경쟁을 막아야 그 시스템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는 굉장히 큰 것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 미래의 안락한 생활, 자아실현의 기회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승자독식’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승자가 되지 못하면 사회적 지위도, 안락한 생활도, 자아실현의 기회도 빼앗긴다? 극단적인 경쟁이 일어난다. 패자는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던 것까지 잃는다. 반면 승자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차지한다. 오늘날 현실이 그와 가깝다.

그렇다면 ‘국민 개인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승자독식’을 막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교육에서 승자독식이란, 대학입시의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 번 서열 높은 대학에 입학하면 그것만으로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동문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하는 식으로 승승장구하는 반면, 그런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훨씬 더 노력해도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교육이 그 목적을 이루려면 이런 상태를 막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경쟁을 놔둔 채로 입시제도나 고등학교 교육과정 같은 것을 바꿔서 사교육비나 공교육 불신 같은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면피용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현 상태에서 이익을 보는 자들, 경쟁에서 이길 '실탄'이 충분한 자들이 하는 말이다.  정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경쟁을 약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대학의 서열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논점 일탈이 등장한다.  대학의 서열은 기업들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기 때문이므로 기업들이 출신대학에 따른 차별을 안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대학이나 정부 쪽에서 만들어 낸, 책임전가용 멘트다.  내가 기업의 신입사원을 뽑는 담당자라고 생각해 보자.  수많은 지원자들의 능력이나 인성을 속속들이 파악할 방법은 어차피 없다.  주어진 정보로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  그런데 서열 높은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은 이미 '머리가 좋고, 윗사람 말 잘 듣고,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검증을 거친 것으로 봐야 한다.  출신대학을 고려하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너무나 손쉽게 원하는 사원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이걸 어떻게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기업에서 마지못해 출신대학을 고려하지 않고 능력과 인성을 보아 뽑는다고 선전을 할 지 몰라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대부분 유명한 대학 출신을 뽑고 구색맞추기로 유명하지 않은 대학 출신자 몇 명을 뽑아 놓고는 '이거 봐라, 우리 회사는 유명 대학 안 나와도 들어올 수 있다' 고 선전할 것이다.

그렇다.  그냥 대학서열을 인위적으로 없애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실 대학서열의 정체는 '수능 커트라인 서열'에 불과하다.  수능 커트라인만 통일하면 대학 서열을 깨뜨릴 수 있다.  쉽지 않은가?  수능을 자격고사로 하여, 합격한 학생들은 모두 대학에 갈 수 있되 거주지 등을 고려하여 국가가 지정해 주는 대학에 가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대학에 강제할 필요도 없다.  국공립 대학들과 원하는 사립대학들만을 가지고 이런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공공대학 네트워크'에 세금을 과감히 투입, 등록금을 무상이나 매우 적은 금액으로 하면서도 교육의 질을 높인다.  그렇게 '공공대학 네트워크'에 못 들어간 학생들만 사립대학에 가는 상황을 만든다면 장기적으로 상당수 사립대학도 이 네트워크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 '공공대학 네트워크'가 고등학교 졸업자의 30%만 수용할 수 있어도 대학의 공공성과, 학교의 공공성은 현저히 개선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처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말해온 것이다.  심지어 구체적인 절차와 예산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경쟁을 시킨다' 라든가 '기업에서 사람 뽑는 방법이 먼저 바뀌어야...' 따위의 헛소리는 무시하자.  경쟁을 억제해야 사회가 유지된다.   지금의 죽기살기식 경쟁의 원인은 대학서열이다.  그러니 대학 서열을 깨뜨려야 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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