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시간을 파는 남자(El vendedor de tiempo)
저자: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Fernando Trias de Bes)
출판사: 21세기북스
5분에 1.99달러...
1.99달러를 주고 산 빈 통을 열면 언제건 5분의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돈을 주고 구입한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고용주들이 그만큼 급료를 깎을 수는 있겠지만, 5분에 해당하는 급료가 보잘것 없다보니 그것도 소용 없다.
시간을 판다고 말은 하지만 주인공인 TC('보통 남자') 가 실제로 파는 것은 '자유' 다. 5분 동안의 자유를 1.99달러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포기하고 자유를 구입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시간(자유)이 없기 때문에, 5분에 해당하는 급료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5분을 구입한다.
어처구니없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이 사회,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다. 나는 이처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는 없지만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많다.
말하자면, "근무시간을 줄이고 월급을 덜 받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에게 적당한 노동의 양은 '반일 노동' 그러니까 하루 4시간 정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정도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말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리트윗'하고 다녔다. 지금의 반만 일하고, 월급을 반으로 줄인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그래서 알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월급을 지금의 반만 받는다면 살아갈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지금의 상태에서 내 월급만 반으로 줄어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회 전체가 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돈은 적고 시간이 많다면? 차 안 사고 웬만하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않을까?, 외식 덜 하고 대신 집에서 요리해 먹지 않을까? 비행기 여행 덜 다니고 기차여행을 다니지 않을까?
그러면 소비가 줄어들어 산업이 망한다는 반론도 있다. 그것도 과연 그럴까? 월급이 적은 대신 실업자가 없어지면 그들도 적당히 소비를 할 것 아닌가? 보석이나 고가 핸드백, 휴대폰, 자동차 등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은 소비가 줄겠지만 식품 같은 생활 필수품은 소비가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산업이 그쪽으로 발달할 것이다. 사실, 노동시간이 반으로 준다고 해서 월급이 반으로 줄 것 같지도 않다(필요한 노동자의 수가 많아지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주주의 이윤이 줄어들겠지.
내가 '반일 노동' 이야기를 할 때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사였다. 교사 월급이 반으로 줄면, 정말 살아갈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차 굴리고, 외식하고, 비행기 여행 다니고, 아이들 사교육 시키고, 비싼 아파트를 먼저 사고 대출금을 갚고 하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이런 것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는가? 낮은 월급과 걸핏하면 당하는 해고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보다, 내가 차 못 굴리고 아이들 사교육 못 시키는 고통을 더 크게 생각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사회의 체제 그 자체일 것이다.
체제란 지배-피지배 관계를 듣기 좋게 부르는 이름일 따름이다.
고대, 중세에는 지배자들이 스스로를 신의 대리인이라고 속여서 그 '체제'를 유지했을지 모르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일자리의 개수를 줄이고 그것을 못 얻으면 큰 고통을 받게 만들어 '실업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것 같다. 직장이 있어도 장시간 노동으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직장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유지되지 못하는 이런 사회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당연히 '지배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99%'의 피지배자를 '노예'로 만들어 최대한 이윤을 짜내려는 자들이 만든 체제인 것이다.
<시간을 파는 남자>에서 사람들은 월급을 덜 받고 자유를 얻는데 기꺼이 동참하고, 결국 '체제'는 붕괴한다. 현실에서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데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은 자기들의 천국인 현 체제가 흔들릴 것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불평등', '착취', '노예'
아직도 이런 말들로 사회를 묘사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려면 자유를 주어야 한다.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책] 도가니, 초콜릿 전쟁, 이끼 - 악은 강하다
우리 집에 공지영 팬이 있어서 얼마 전에 <도가니>를 읽게 되었는데 어지간히 답답한 이야기인 것 같다(답답한 걸로 치면 내가 읽은 책 중에는 '남한산성'이 최고인 듯하지만).
우리는 왜 이런 답답한 이야기들을 읽는 것일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혹은 '그리하여 정의는 또다시 승리했다' 로 끝나는,
잠시의 통쾌함을 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점점 흐리게 하는 이야기들보다도 이런 답답한 이야기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마도 그 편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도가니>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의 다른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제목: 도가니
저자: 공지영
출판사: 창비
제목: 초콜릿 전쟁(The Chocolate War)
저자: 로버트 코마이어
출판사: 비룡소
제목: 이끼(웹툰 / 만화 5권)
저자: 윤태호
출판사: 미디어 다음 / 한국데이터하우스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세 이야기가 모두 작고 폐쇄적인 사회를 통해 '기득권'의 지배를 계속되게 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말하자면, 악한 자들이 어떻게 힘을 갖게 되고, 악하면서 강한 그들이 어떻게 서로서로 돕고 있으며, 어떻게 약자들을 침묵시키며, 도전하는 자들을 어떻게 탄압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악함' 이란 내 나름대로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
<도가니>에서는 농아인 학생들을 성폭행하는 교장과 그를 감싸는 무진시의 권력층
<초콜릿 전쟁>에서는 '과제'를 통해 학생들을 은근히 협박하고 통제하는 아치와 그의 조직 자경대
<이끼>에서는 폐쇄적인 마을을 이루며 이익을 위해 주변 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장'과 그의 하수인들
이들이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하면서 강한 자들이다.
현실은 이런 악하면서 강한 지배자들이 약자들의 것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짓밟으면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약자들이 힘을 모아서 저항하는 것뿐인데, 지배자들은 교묘하거나(여론 조작) 무자비한(폭력) 방법으로 그것을 막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런 강자들(다시 말해,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특권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상인데, 이런 악한 지배자들이 볼 때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말은 그렇게 안 할지 몰라도.
<이끼>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온갖 악행과 만행을 저지른 '이장'을 잡으러 검사가 들이닥쳤지만 이미 이장은 그 검사의 '대가리의 대가리의 대가리'에게 줄을 대 놓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우리는 왜 이런 답답한 이야기들을 읽는 것일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혹은 '그리하여 정의는 또다시 승리했다' 로 끝나는,
잠시의 통쾌함을 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점점 흐리게 하는 이야기들보다도 이런 답답한 이야기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마도 그 편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도가니>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의 다른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제목: 도가니
저자: 공지영
출판사: 창비
제목: 초콜릿 전쟁(The Chocolate War)
저자: 로버트 코마이어
출판사: 비룡소
제목: 이끼(웹툰 / 만화 5권)
저자: 윤태호
출판사: 미디어 다음 / 한국데이터하우스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세 이야기가 모두 작고 폐쇄적인 사회를 통해 '기득권'의 지배를 계속되게 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말하자면, 악한 자들이 어떻게 힘을 갖게 되고, 악하면서 강한 그들이 어떻게 서로서로 돕고 있으며, 어떻게 약자들을 침묵시키며, 도전하는 자들을 어떻게 탄압하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악함' 이란 내 나름대로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짓밟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
<도가니>에서는 농아인 학생들을 성폭행하는 교장과 그를 감싸는 무진시의 권력층
<초콜릿 전쟁>에서는 '과제'를 통해 학생들을 은근히 협박하고 통제하는 아치와 그의 조직 자경대
<이끼>에서는 폐쇄적인 마을을 이루며 이익을 위해 주변 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장'과 그의 하수인들
이들이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악하면서 강한 자들이다.
현실은 이런 악하면서 강한 지배자들이 약자들의 것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짓밟으면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약자들이 힘을 모아서 저항하는 것뿐인데, 지배자들은 교묘하거나(여론 조작) 무자비한(폭력) 방법으로 그것을 막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런 강자들(다시 말해,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특권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사상인데, 이런 악한 지배자들이 볼 때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말은 그렇게 안 할지 몰라도.
<이끼>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온갖 악행과 만행을 저지른 '이장'을 잡으러 검사가 들이닥쳤지만 이미 이장은 그 검사의 '대가리의 대가리의 대가리'에게 줄을 대 놓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내 건들라모... 대한민국을 대청소해야 할끼야나에게는 사뭇 감명깊은(?) 대사였다.
[책] 국가란 무엇인가 - 국가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제목: 국가란 무엇인가
저자: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학교 일로 '계획서' 라는 것을 많이 쓰게 되는데 계획서의 맨 앞에 '목적'을 밝히는 것은 그 사업(예를 들어 교육과정 운영, 부진학생지도 등)을 '왜' 하는지가 그 이후의 모든 것(누가, 언제, 어떻게 등)을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철학이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철학이란, 정치를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에 답해야 한다. 사실 '정치를 왜 하는가' 와 '정치란 무엇인가' 는 같은 질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에 답함으로써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따라올 것이다.
나는 원래 정치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정치란 정치가들이 하는 전문 분야로, 나는 몰라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국가에도 정치가 있지만, 가정에도 정치가 있었고, 학교에도, 수학교사모임에도 정치가 있었다. 작은 집단이건 큰 집단이건,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할 경우 필연적으로 그 집단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가지며, 어떤 식으로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정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세금을 얼마나 걷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어떤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국가' 에 있다. 국가는 폭력(군대와 경찰)으로 지구의 일부를 점령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결정을 강제한다. 몇몇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몰라라 하기에는, 국가의 결정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와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 갈래의 생각인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한 다음,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자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 워낙 담담하게 해설해 놓아, 평소 내가 '수구기득권세력' 이라 부르며 자기가 가진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면서 약자를 수탈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라고 경멸했던 사람들도 어쩌면 국가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 공존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다. 비록 현재 정권(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할 권리)을 잡고 있는 국가주의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국가안보', '국익'이 우선이기 때문인 것이다. 반면 나에게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로부터 정권을 빼앗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우선순위를 바꾸기 위해서(즉,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이지, 그들이 나쁜 놈들이라서가 아니다(물론, 많은 '나쁜 놈들'이 이 국가주의자들이 만든 환경에 기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이다. 말하자면, '적'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유시민처럼 자유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국가안보나 국익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자(파시스트)는 절대로 아니고, 국가가 자본가들의 집행위원회일 뿐이므로 국가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개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일정한(그러나 제한되고 통제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인인 저자 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국가라는 것을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에 차례로 서 보고, 자신의 것과 다른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유시민
출판사: 돌베개
학교 일로 '계획서' 라는 것을 많이 쓰게 되는데 계획서의 맨 앞에 '목적'을 밝히는 것은 그 사업(예를 들어 교육과정 운영, 부진학생지도 등)을 '왜' 하는지가 그 이후의 모든 것(누가, 언제, 어떻게 등)을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철학이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철학이란, 정치를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에 답해야 한다. 사실 '정치를 왜 하는가' 와 '정치란 무엇인가' 는 같은 질문이 아닐까? 그리고 이에 답함으로써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따라올 것이다.
나는 원래 정치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정치란 정치가들이 하는 전문 분야로, 나는 몰라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국가에도 정치가 있지만, 가정에도 정치가 있었고, 학교에도, 수학교사모임에도 정치가 있었다. 작은 집단이건 큰 집단이건,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할 경우 필연적으로 그 집단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그 결정할 권리를 누가 가지며, 어떤 식으로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정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이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세금을 얼마나 걷어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어떤 행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가 '국가' 에 있다. 국가는 폭력(군대와 경찰)으로 지구의 일부를 점령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결정을 강제한다. 몇몇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몰라라 하기에는, 국가의 결정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와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는 좋은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 갈래의 생각인 국가주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한 다음,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자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 워낙 담담하게 해설해 놓아, 평소 내가 '수구기득권세력' 이라 부르며 자기가 가진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키면서 약자를 수탈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는 자들이라고 경멸했던 사람들도 어쩌면 국가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 공존하지 못할 정도로 나쁜 사람들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렇다. 비록 현재 정권(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할 권리)을 잡고 있는 국가주의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국가안보', '국익'이 우선이기 때문인 것이다. 반면 나에게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로부터 정권을 빼앗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우선순위를 바꾸기 위해서(즉,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이지, 그들이 나쁜 놈들이라서가 아니다(물론, 많은 '나쁜 놈들'이 이 국가주의자들이 만든 환경에 기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것이다. 말하자면, '적'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나 역시 유시민처럼 자유주의자에 속할 것이다. 국가안보나 국익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자(파시스트)는 절대로 아니고, 국가가 자본가들의 집행위원회일 뿐이므로 국가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고, 개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일정한(그러나 제한되고 통제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인인 저자 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국가라는 것을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에 차례로 서 보고, 자신의 것과 다른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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