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과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과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사회] 스타트렉 TNG에서 본, 인권에 대한 좋은 문구

요즘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Star Trek: The Next Generation)을 '정주행' 하고 있는데, 처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드라마인 것 같다.  다른 SF처럼 실제와 상상을 섞어 그럴싸한 과학 용어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만, 주제는 상당히 철학적인 것들이다. 나같은 일반인이 따라가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는 깊은 주제를 파고들어갈 때가 많다. 주인공인 피카드 선장(Captain Jean-Luc Picard)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를 끌고 지금까지도 미국 대중문화의 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니 놀랍다. 하긴 지금 같으면 많은 시청자들이 골치 아픈 이야기보다는 수많은 다른 채널 중에 하나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내용을 선택할 테니 이런 드라마는 수명이 짧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볼 거리가 별로 없다 보니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내용을 담을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어제 본 에피소드(시즌 4 의 에피소드 21, "Drumhead")에서 감명깊은(?) 대사들이 줄줄이 나오는 바람에 보다 말고 메모를 하게 됐고,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여기에 적어 둔다.

이야기는 적국인 로뮬란 제국의 스파이를 찾기 위해 '공안수사 전문가' 사티 제독(즉 피카드 선장보다 계급이 높다)이 승선하면서 시작된다. 로뮬란의 스파이는 곧 잡혔지만 사티 제독은 내통자가 더 있을 수 있다며 스파이와 접촉한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한 선원이 할아버지가 로뮬란 인임을 속이고 우주함대에 들어온 사실이 밝혀지고 그에 대한 마녀 사냥이 시작된다. 이런 일들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피카드 선장이 하는 말들이 다음과 같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세 번에 걸쳐 언급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첫 번째 구절은 피카드가 어떤 책을 인용했다고 말하지만 이야기 속의 책이니 그냥 작가가 쓴 것으로 보인다.  (한글 자막을 못 구해 '어쩔 수 없이' 영어 자막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With the first link the chain is forged.
The first speech censored,
the first thought forbidden,
the first first freedom denied
chains us all irrevocably.

첫 번째 고리가 만들어질 때 사슬은 만들어진다.
처음으로 표현이 검열당할 때,
처음으로 생각이 금지당할 때,
처음으로 자유가 구속당할 때,
우리 모두는 풀 수 없는 사슬에 묶인다.

...


We think we've come so far.
Torture of heretics, burning of witches is all ancient history.
Then, before you can blink an eye, suddenly,
it threatens to start all over.

우리는 이만큼이나 이뤘다고 생각하지.
이단자를 고문하고, 마녀를 불태운 건 먼 역사 속의 일이라고.
그러다가 갑자기, 눈 한 번 깜박하기도 전에
그 모든 일이 다시 시작되는 거야.

...

Villains who twirl their mustaches are easy to spot.
Those who clothe themselves in good deeds are well-camouflaged.
[They] will always be with us waiting for the right climate in which to flourish
spreading fear in the name of righteousness.
Vigilance. That is the price we have to continually pay.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는 악당은 알아보기 쉽다네.
훌륭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자들이야말로 위장의 명수지.
[그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네.
옳은 일을 하는 척 공포를 퍼뜨리며
기세를 떨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일세.
깨어 있어야 하네.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치러야 할 대가이니까.

2015년 5월 8일 금요일

[과학] 인간은 왜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나?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일 뿐이다'
이것이 데스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가 1967년에 쓴 <털없는 원숭이(The Naked Ape)>의 기본 명제이다.  우리말의 '원숭이'는 실감나게 만들기 위해 쓴 것 같고 Ape 는 '유인원'을 말한다.  사람은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과 같이 생물 분류상 하나의 '과'를 이룬다(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특히 침팬지와 보노보는 사람과 더욱 가까운 친척 종(정확히는 '속')이다.  문제는 가장 가까운 이런 유인원들과도 사람은 너무나 다른 외형과 행동방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털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으며, 나무 위가 아닌 평지에서 생활하며, 상당부분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등 성적인 행동방식도 많이 다르다.  또한 높은 지능, 복잡한 언어, 정교한 손재주를 바탕으로 다른 유인원이 흉내도 못 낼 정도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침팬지나 보노보와는 전혀 달라 보인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특이하게 만들었나?  이런 의문은 나에게 매우 흥미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동안 내가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를 정리해 본다.


1. 직접적인 이유: 나무에서 내려왔기 때문

다른 유인원은 대개 나무 위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과일 같은 것을 주식으로 한다.  한 곳에서 먹이가 부족해지면 이동한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 맹수의 공격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에 비해 땅 위에서 생활하는 것은 먹이를 구하는 것도, 다른 동물들로부터 자신이나 무리를 보호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나무에서 살던 유인원이 불가피하게 나무가 없는 땅 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면 어떨까?  유인원이 평지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으로 인간의 행동 중 많은 것이 설명된다.  숲이 아닌 평지(초원이나 사바나)에서는 일단 몸을 보호하기 쉬운 동굴 같은 곳을 근거지로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요에 따라 이동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유인원 무리는 사냥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 사실이 중요해진다.  사냥의 특성상 무리가 협력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직립보행하면서 손에 도구(무기)를 쥐는 것도 역시 사냥에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 중 특히 남자들은 축구나 골프 등 초원에서 달리면서 뭔가를 쫓아가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  이것은 사냥할 때 쾌감을 느끼도록 뇌가 프로그램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래야 사냥을 열심히 해서 결과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므로).  지금처럼 거대한 문명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인간의 특성, 즉 다른 유인원에 비해 공격성이 현저히 낮고 서로 협력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 역시 원래는 사냥을 해야만 하는 환경에 적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일부일처제이다.  집단적으로 사냥을 하는 동물의 경우 한 쌍의 암수 사이의 평생 가는 관계와 공동 육아, 즉 일부일처제가 나타나는 일이 많다.  우두머리가 암컷을 독차지하는 일반적인 유인원의 행태는 사냥을 위해서 모든 수컷이 협력해야 하는 생존 조건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게 된 이후 대부분이 문명 사회에 살고 있다.  농사는 수만 년, 도시 생활은 수천 년밖에 안 됐으므로 인류의 본능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수컷(남자)끼리의 서열 다툼, 강한 수컷이 많은 암컷(여자)을 거느리려는 경향 등 유인원의 본능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한편으로 대부분의 인류가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한 가족 제도를 갖고 있음을 볼 때 유인원의 본능을 사회적 제도로써 억누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나무에서 내려온 뒤, 집단적으로 사냥을 하던 시기에 생겨난 심리적 경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왜 나무에서 내려왔나?

그렇다면 나무에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유인원이 평지에서 살려면 삶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소규모 유인원 집단이 숲에서 나와서 살아가는 식으로는 안 된다.  그러면 그 자식 세대쯤 전멸하거나 다시 숲으로 들어가게 될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인가?

갑작스런 기후 변화로 광대한 지역의 숲이 급격히 사라진 경우라면 어떨까?  그러면 거기 살던 수많은 유인원이 어디로 이동하지 못한 채 대부분 죽게 될 것이다.  그대로 멸종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평지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살아남아서 자손을 남길 수 있었다면, 점점 평지 생활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종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기후 변화가 갑작스럽지 않더라도, 산맥이나 큰 강 등으로 인해 지리적으로 분리된 지역에 고립된 채 장기간에 걸쳐 숲이 서서히 없어진다면, 역시 평지에 적응한 종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나타난 시기를 전후하여 아프리카에서는 이러한 환경 변화가 실제로 있었다.  약 300만년 전, 떨어져 있던 남북 아메리카가 육지(지금의 파나마 지협)로 연결되면서 대서양에서 남북 아메리카 사이를 흘러 태평양으로 가던 해류가 막혀 지구 전체적으로 해류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이로 인해 북극,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의 기후가 변했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는 건조해져서 숲이 줄어들고, 그런 환경 변화가 유인원 일부를 평지에 적응하여 진화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3. 왜 지능이 발달했나?

나무에서 내려와 평지에서 사냥을 하게 된 것으로 인간의 모든 특성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능이 쓸데없이(?) 높고, 추상적인 내용을 표현,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림, 음악, 이야기 등 생활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기 위해서라는 틀로는 설명이 곤란한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물에게는 '생존' 이외에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번식'이다.

사실 번식은 유전자 입장에서는 역시 생존이다.  유전자가 계속 '생존'하려면 개체(식물이나 동물 자체)가 일단 생존을 하고, 번식까지 성공해야 한다.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함께 번식이라는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  현대 진화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지능이나 언어, 예술 등이 등장한 이유는 번식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수컷 공작새의 꼬리는 그야말로 쓸데없이 길고 화려해서 생존에 커다란 방해가 될 지경이다.  하지만 번식을 위해서 필요하다.  암컷이 그 꼬리를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왜 그런 쓸데없는 형질을 가진 수컷을 선택하는가?  처음 시작은 아마도 긴 꼬리를 갖고 있다는 불리함에도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것이 다른 면에서 좋은 형질을 갖고 있다는 표시가 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우연히 어떤 작은 집단의 암컷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이런 경향이 시작되면 양(+)의 피드백이 되어 멈추기 어렵다.  긴 꼬리의 수컷과, 그런 수컷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암컷이 어떤 집단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꼬리가 짧은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잘 받지 못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어렵다.  짧은 꼬리의 수컷을 선택하는 암컷 역시, 그 새끼들 중 수컷은 꼬리가 짧을 것이고, 새끼들 중 암컷도 짝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서 번식에 불리해지게 된다.  이러다 보면 전체적으로 수컷의 꼬리가 길어지고, 그 중에서도 더 긴 꼬리를 갖게 되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하는 식으로 세대가 내려갈수록 꼬리가 점점 길어지게 되며, 꼬리가 생존에 방해가 되어 번식의 이점을 상쇄할 지경이 되어서야 그런 경향이 멈추게 된다.

생존에 필요 없어 보이는 인간의 형질들 역시 그런 것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높은 지능을 과시하는 구애 행동으로서 복잡한 언어나 그림 같은 것이 사용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런 것이 여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그 방향으로 급속한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공작새의 꼬리 같은 경우는 암컷에게는 소용이 없고 생존에 불리함만 주기 때문에 암컷에게서는 해당 유전자가 억제되어 형질이 나타나지 않지만, 인간의 경우 두뇌의 발달은 여자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여자에게서도 그 유전자가 억제되지 않고 발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경우 초기부터 사회적 생활 방식 등의 원인으로 인해 여자가 일방적으로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성 선택에 의해 발달된 형질인데 왜 남녀에게서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사모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를 했다거나 그림을 그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우스개로만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부를 해서 지식을 쌓는 것도, 말을 유창하게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는 식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갖고 공부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각자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공부를 하고 대화가 즐거워서, 남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좋아서 유머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무슨 의도를 갖고 물건을 입으로 빨고 하는 것이 아니라도 결과적으로 그 행동이 면역성을 높여 생존을 돕듯이, 인간의 '인간다운' 행동들은 아마도 (우리도 모르게)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위해 생겨났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이상한' 신체와 행동방식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도 이제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간이 압도적인 지능과 문화를 통해 수많은 다른 생물들을 멸종시키는 데까지 가고 있는 것은 무슨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우연이 겹쳐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인류처럼, 혹은 인류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는 종이 생겨나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느니 하는 오만함을 누그러뜨리는 데 이런 지식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책] 크로마뇽 -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들

제목: 크로마뇽(Cro-Magnon: How the Ice Age Gave Birth to the First Modern Humans)
지은이: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
출판사: 더숲

<지구에서 온 사나이(the Man from Earth)>라는 영화에는 크로마뇽인이 어떤 이유로 현대까지 살아있다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우리도 크로마뇽인이다.  비록 우리가 '크로마뇽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주로 수만 년 전에 동굴이나 허술한 천막에서 살면서 사냥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일컫지만, 그들은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신체 구조와 정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크로마뇽인 아기를 현대에 데려와서 키우면 현대인과 다를 바 없이 잘 살 것이다.  또한, 지금도 지구상에는 수만 년 전과 별 다름 없이 살고 있는 '크로마뇽인'들이 있다.  '크로마뇽인'과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축적된 지식과 사회제도, 문화 같은 것이 우리에게 그들과 다른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이 책(<크로마뇽>)에서는 크로마뇽인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은 사냥을 해서 살아갔으며, 빙하기에도 살던 곳에서 쉽사리 물러나지 않고 순록 같은 동물을 사냥하며 살았다.  다른 종인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살아가기도 했지만, 네안데르탈인은 결국 멸종했고 크로마뇽인만 살아남았다.

이 책에서는 크로마뇽인들의 기술적, 예술적인 능력이 현대인과 다름 없었다는 증거를 많이 볼 수 있다.  나에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의 과학기술, 그들이 쓰던 도구들이다.  나는 '뗀석기'라는 것이 그냥 돌을 아무렇게나 깨뜨려 모양에 맞게 이용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상당히 계획적으로 만든 도구였으며, 뗀석기의 좋은 재료가 되는 돌을 찾기 위해 매우 멀리까지 가거나, '무역'을 하기도 했다.  정교한 석기를 써서 뼈나 뿔을 쪼개고 다듬어 화살촉이나 낚싯바늘, 심지어 옷을 만드는, 귀가 있는 바늘도 만들었다.  이 책에 의하면 크로마뇽인을 번영하게 해 준 두 개의 기술 혁신은 바로 '투창기'와 '귀가 있는 바늘'이다.

투창기는 멀리서도 창을 던질 수 있게 해서 사냥 도중에 죽거나 중상을 입는 사람들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매머드같은 대형 초식동물이 멸종한 것도 투창기로 무장한 인간들의 '대량학살' 때문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나타나고 천년 남짓한 기간에 남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대형 동물이 모두 사라졌고, 이들이 내뱉는, 강력한 온실효과를 갖는 메탄이 감소하여 빙하기가 왔다는 말도 있다.

귀가 있는 바늘은 가죽으로 만든 옷을 몸에 맞게 만들어 여러 겹으로 겹쳐 입을 수 있게 함으로써 추운 날씨에도 활동할 수 있게 했고, 이 때문에 크로마뇽인의 거주 지역은 매우 넓어졌다.

우리 집에 <아이스 에이지>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DVD가 있는데, 거기서는 이미 멸종한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매머드, 검치호랑이, 땅나무늘보(megalonyx), 그리고 '인간'이다. DVD 해설에서는 이 인간이 네안데르탈인이라고(따라서 역시 멸종한 동물이라고) 나오지만, 이 책에서 얻은 정보에 비추어 옷이나 도구, 장신구, 그리고 벽화를 그리는 등의 생활 양식을 가지고 판단해 보건대 영화 속의 인간은 크로마뇽인에 가깝다.

크로마뇽인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깝고,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사실 우리의 행동양식은 협동해서 사냥을 하던 크로마뇽인에게 더 적합한 것이 많이 있다.  미술도 그들의 것에 뿌리를 둔 것은 명확하다.  남아있지 않아서 그렇지 음악도 그럴 것이다.  크로마뇽인이 사용하던 창과 투창기가 발달해 화살과 활이, 포탄과 대포가, 총알과 총이 만들어진 것이고,  현대의 바늘이나 낚싯바늘 같은 것은 재료만 바뀌었지 크로마뇽인이 사용한 것에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역사와 마찬가지로 고고학 역시 현재의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죽은 것을 파헤쳐 기록하는 활동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 시절에도 기술혁신이 있었고, 문화의 전파가 있었고, 환경파괴도 있었으며, 그들도 우리처럼 낙서도 하고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기도 했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진다.

2011년 10월 13일 목요일

[책] 사회적 원자 - 자연과학적 방법이 만드는 사회과학의 혁명

제목: 사회적 원자(the Social Atom)
지은이: 마크 뷰캐넌(Mark Buchanan)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과학적 방법으로 세상만사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전부터 있어 왔지만 지금까지 그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사는 바로 이 시대가 그 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사회과학에 자연과학적 방법이 많이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천체의 운동이나 화학 반응 같은 것에 적용해서 현상을 설명하고 새로운 현상을 예측까지 해 냈던 방법들을 사회 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결과는 대개 실제와 동떨어지곤 한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 라는 말을 사람들이 '이론과 실제는 전혀 별개' 라는 뜻으로 쓰곤 하는 이유는, 사회 현상에는 이론이 거의 먹혀들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류 경제학 이론은 물리학(고전역학)과 비슷한 수학적인 형태로 기술되어 있어 꽤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버블경제도 금융위기도 설명하지 못한다. 자연과학에서라면 그 정도로 틀렸으면 이미 사장되었겠지만, 이상하게 계속 그 명맥을 유지할뿐만 아니라 아직도 '주류' 이다. 그 이유는, 그것을 포기하면 경제 현상을 이론으로 다룰 수 있는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뭔가를 하려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이제 꼭 그렇지만은 않게 되었다. 자연과학에서도 얼마 전까지는 계산이 너무 복잡해 할 수 없었던 일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 비행기를 실제로 만들어 날려보지 않고도 설계 단계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능이나 이상 유무를 점검할 수 있다. 원자폭탄 폭발 실험(핵실험)도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인 특성(압력이나 온도 등)에 대한 방정식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이루는 구성요소 하나하나의 특성과 그 상호작용 방식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컴퓨터 안에서 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 책 <사회적 원자>에는 그러한 방법을 사회적 현상에 적용하여 놀랄만한 성공을 거둔 최근의 사례들이 나와 있다. 예를 들어 부의 불평등한 정도에 대한 예측, 기업의 규모와 그 수에 대한 예측 등을 깜짝 놀랄만큼 정확하게 해 낸 것이다. 왜 깜짝 놀랄만큼이냐 하면 그 시뮬레이션의 기본이 되는 사람이나 집단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가정이 매우 거친 것이었는데도 결과가 너무나 현실과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이 거칠다고 해도 핵심을 잘 짚었다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슷한 예로, 지구와 달의 궤도를 계산할 때 수많은 세부 사항을 무시하고 지구와 달을 단지 질량을 가진 '점'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 결과는 매우 정확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가정은 많은 것을 무시했지만 핵심적인 요소를 남겨 놓았기 때문인 것이다.

십여년 전부터 '카오스'니 '복잡계 이론'이니 하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방식(미분방정식을 세우고, 그것을 푸는 방식)으로 불가능했던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비행기의 움직임이나 원자폭탄의 폭발 뿐만 아니라, 새떼의 움직임이나 생태계의 진화, 숙주와 기생충의 군비경쟁 등을 흉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계속 있어 왔다. 이 책은 실제 그 방향으로 탐구했던 과학자들이 이룬 것을 요약하면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책] 삼엽충 - 느린 과학의 세계

제목: 삼엽충(Trilobite!)
저자: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화석으로만 남아있는, 절지동물(절지동물문)의 한 '강'을 이루고 있는 삼엽충의 과학적 의미를 해설하면서, 삼엽충학(넓게는 고생물학)이라는 과학 연구의 역사, 삼엽충학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 등을 곁들인 대중 과학서이다.

나는 삼엽충에 이렇게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또한 삼엽충이 표준화석으로서 지층이 만들어진 연대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다시 말해, 삼엽충에 관련한 내 지식은 고등학교 교과서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약간 넓어진 것이다.

삼엽충은 절지동물문 삼엽충강에 속한 해양동물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며, 크기는 벼룩만한 것으로부터 전갈만한 것까지 다양했다.

'포유류' 도 강(척삭동물문 포유강)을 이룬다. 포유류의 크기 역시 뒤쥐(길이 6cm)부터 고래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포유류가 살아가는 방식이 치타처럼 빠른 사냥꾼에서부터 나무늘보처럼 느린 채집자, 날아다니는 박쥐, 바다를 누비는 고래, 심지어 희한한 것들을 만들어 내며 살아가는 인간 등으로 다양한 것처럼, 삼엽충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았다. 얕은 바다의 모래 위를 바삐 기어다니는 삼엽충, 깊은 바다의 진흙 속, 산소가 거의 없는 곳에서 화학합성 세균과 공생하던 삼엽충, 바다를 헤엄치며 플랑크톤을 먹던 삼엽충 등으로 말이다.

화석만으로 이런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수많은 '삼엽충학자'들이 화석을 발굴하고, 그림을 그리고, 논문을 쓰고, 목록을 만들고, 비교하는 등의 노력을 끈질기게, 오랜 세월에 걸쳐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었기 때문에 대륙이동에 대한 연구 같은 데에 삼엽충 화석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삼엽충에는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삼엽충은 3억 년에 걸친 고생대 내내 지각의 운동(바다가 육지가 되고, 대륙이 움직이는 등), 기후 변화, 대멸종 같은 지구의 역사를 지켜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연결고리는 별로 알려지지 않다가 어느날 갑자기 학계의 주목을 받는 연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삼엽충의 눈에 대한 설명이다. 삼엽충의 수정체는 방해석으로 되어 있다. 방해석은 순수한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투명한 결정이다. 탄산칼슘은 석회암의 주성분으로 종유석, 석순 같은 것을 이루는 물질이다. 삼엽충의 수정체는 투명한 돌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그래서 화석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방해석은 복굴절이라는 광학적 특징을 갖는데, 복굴절은 들어오는 빛을 두 성분으로 갈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꺾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방해석을 통해 사물을 보면 보통 두 개로 보인다. 대부분의 삼엽충의 수정체는 방해석 결정에서 복굴절이 일어나지 않는 유일한 방향으로 빛이 통과되도록, 가늘고 긴 방해석 기둥 수천 개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의 삼엽충(파콥스 아과)의 수정체는 방해석을 둥글게 만들어 볼록렌즈 역할을 하게 하되, 두 종류의 광물(방해석과, 고마그네슘 방해석)을 교묘하게 배치해 초점을 제대로 맞출 수 있도록 만든, 광학적으로 경이적인 작품이다. 인간의 눈에 비해서도 결코 원시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구조이다. 파콥스는 약 4억년 전에 살았던, 크기가 3cm 정도 되는 벌레 비슷한 동물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은, 나중에 등장한 생물의 몸이 꼭 더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파콥스는 일반적인 삼엽충의 방해석 눈을 출발점으로 하였고 뚜렷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환경에서 살았기에 그런 정교한 눈을 갖도록 진화했다. 하지만 고생대 데본기 말에 멸종하여 그 정교한 눈 구조는 이어지지 않았다. 삼엽충 전체는 페름기 말에 멸종하였다(페름기 말에는 모든 생물의 90%가 멸종했다). 지금 살아남아 있는 동물들 중에는 삼엽충의 방해석 눈을 이어받은 것은 없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눈은 삼엽충과는 독립적으로 발달해 온 것이다.

삼엽충이라는 한정된 소재를 가지고 자세히(저자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엄청나게 요약한 것이겠지만) 파고들어가면서 색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이 책은 다른 데서 접하기 어려운 많은 흥미로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과학 서적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별로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곳곳에 유머를 섞어 놓았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고생물학자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책으로 '핀치의 부리(The Beak of the Finch, 조너던 와이너, 이끌리오)'를 읽은 적이 있다.

[책] 생명의 도약 - 생명이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다

제목: 생명의 도약(Life Ascending: The Ten Great Inventions of Evolution)
지은이: 닉 레인(Nick Lane), 김정은 역
출판사: 글항아리

사실 생명이라는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제대로 밝혀낸 것은 다윈이다. 그 원리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다.

원리는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증거도 수없이 많지만, 구체적인 생명 현상, 예를 들어 광합성이 어떻게 해서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느냐를 설명하는 것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그 숙제를 해 온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들의 핵심을 설명하는 보고서가 여기 있다.

<생명의 도약>의 내용은 부제 그대로 '진화의 10대 발명'이다. 중요한 10가지 생명 현상이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된 과정을 진화라는 사고방식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그동안 과학자들이 알아낸 수많은 화학적, 생리학적, 생태학적 지식들이 동원된다. 이 책의 풍부한 과학적, 철학적 내용은 실제 읽어야만 알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10가지 각각에 대해 최대한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생명 그 자체 - 심해의 알칼리성 열수 분출공의 특이한 화학적 환경에서 아미노산, RNA 같은 유기 분자와 크레브스회로같은 중요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2. DNA - 최초에는 RNA가 유기화학반응의 촉매로 도입되었고 그 후에 복제의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지금도 일부 바이러스는 RNA로 복제함), 나중에 DNA가 '안정된 설계도' 역할을 하게 되었다.

3. 광합성 - 세균은 돌연변이와 유전자 수평이동을 통해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 광자의 에너지를 이용, 물을 산화시켜 ATP(생화학적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와, 역시 광자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를 환원시켜 유기물을 만드는 장치가 먼저 나타났고, 그 두 가지 장치를 모두 갖춘 남조세균(cyanobacteria)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지금과 같은 광합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남조세균은 나중에 다른 세포(진핵세포) 안으로 들어가 엽록체가 되었고, 그로 인해 녹색식물 등의 광합성 생물이 나타나게 되었다.

4. 진핵세포 - 산소호흡을 할 수 있는 세균과, 그 세균의 부산물을 이용하여 살아가는 고세균(세균과 비슷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종류인 미생물)이 공생하다가 세균이 고세균 안으로 들어가면서 유전체가 섞여서 만들어졌다. 산소호흡을 하던 세균은 세포내 소기관이 되었고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다. 이제 에너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세포는 쓸데없는 DNA가 많아지는 현상이 생겼고, 그런 현상을 통제하기 위해 핵이 생겼다. 또한 동물, 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이 나타나게 된 것도 진핵세포(즉, 미토콘드리아가 있는 세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5. 성 - 진핵세포가 형성되고 두 미생물의 유전체가 섞이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빈번하고 빠른 변이가 일어났고 세포융합과 감수분열(둘 다 세균과 고세균의 생화학적인 절차로 간단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통해 해로운 유전자 조합을 제거하지 않은 종류의 세포들은 멸종했다. 현재 무성생식을 하고 있는 진핵생물들은 진화 과정에서 유성생식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6. 운동 - 세균에서 유래한, 세포의 뼈대를 이루는 액틴과 튜블린에 미오신이 붙어 움직이면서 진핵세포 내에서 분자나 소기관을 이리저리 움직여 주는 '물류' 시스템이 생겼다. 그 액틴과 미오신이 나중에 근육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7. 시각 - 빛을 감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세균이나 고세균 수준에서 이미 빛을 이용하는 장치들은 있었고, 캄브리아기에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몸집이 큰 동물들이 나오게 되어 시각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신경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망막에서 시작해 수정체 등을 갖춘 눈이 되는 것은 진화에서는 쉬운 일이며, 그래서 여러 번 독립적으로 일어났다.

8. 온혈성 - 약 2억 5천만년 전, 페름기의 화산활동으로 시작된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파충류들이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풀 같은 식물밖에 없었는데 식물은 질소 함량이 낮다. 필요한 질소를 섭취하기 위해 식물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탄소 같은 다른 성분은 남아돈다. 이 남아도는 영양소를 그냥 저장하는 방향으로 간 동물은 거대한 공룡이 되었고, 태우는 방향으로 간 동물은 남아도는 에너지를 사용하여 재빠른 몸놀림과 밤에도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온혈동물이 되었다.

9. 의식 - 감각을 통합하여 관장하는 의식은 함께 흥분해야 할 뉴런들 사이의 연결(시냅스)은 살리고 불필요한 연결을 없애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이런 일은 주로 유아기에 이루어지는데, 수많은 뉴런 연결부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다. 의식의 존재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함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그 구체적인 진화 과정은 아직 모른다.

10. 죽음 - 미토콘드리아 내부에 있는 DNA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미토콘드리아 내막의 고전압 때문에 쉽게 손상된다. 손상에 대비해서 복사본이 5개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손상은 축적되고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손상되면 미토콘드리아는 분해되고, 그런 식으로 계속되면 세포가, 그리고 개체 전체가 기능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이 죽음이다. 따라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세포(생식세포)는 최대한 미토콘드리아 손상이 적도록 되도록 빨리 만들어져야 하며, 태아가 발생하자마자 곧 생식세포를 만드는 것은 그런 이유다(그러고도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떨어지는 생식세포는 또다시 솎아내어진다). 체세포를 복제하여 만든 다세포 생물(예를 들어 복제양 돌리)의 수명이 짧은 것도, 복제의 원형인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는 이미 상당 기간 DNA 손상을 입은 상태이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책] 정자전쟁 -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 탐구

제목: 정자 전쟁(Sperm Wars)
저자: 로빈 베이커
출판사: 이학사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나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현상들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성교가 번식을 위한 활동이라면, 임신 가능성에 관계 없이 수시로 성교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라서? 하지만 다른 동물들 중에도 이런 경우는 많다.

이 책은 인간의 성에 관련된 행동 방식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간다. 거기에는 유전자 수준, 세포(정자, 난자) 수준, 사회적 수준의 원인들이 얽혀 있고, 이 모든 현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진화' 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책은 37개의 <장면>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먼저 성적인 행동의 전형적인 예를 말해 주는 가상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그 이야기의 상황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나온다. 그 가상의 이야기는 거의 "야설" 처럼 보이지만 과장이나 왜곡 없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과학적인 설명 부분은 각 <장면>에 대해 일관성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이론의 핵심에 '정자전쟁' 이라는 개념이 있다. 정자전쟁은 한 여자의 몸 안에 짧은 간격을 두고 여러 남자의 정자가 들어왔을 때, 서로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긴 편의 정자가 난자를 수태시킨다(가임기인 경우). 인구의 4%가 정자전쟁을 거쳐서 수태되어 태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별것 아닌 수치처럼 보이지만, 정자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남자의 행동방식, 그리고 좀 더 경쟁력 있는 자식을 만들기 위해 정자전쟁을 적절히 이용하는 여자의 행동방식은 곧바로 더 많은, 더 경쟁력 있는 후손을 만들게 되고(여기서 경쟁력이란 유전자를 더 널리 퍼뜨린다는 의미), 그 후손들 역시 부모에게서 그러한 형질을 물려받을 확률이 크다. 그리하여 그러한 형질은 계속 퍼져 나가고, 사실상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성에 관련된 행동을 정자전쟁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적인 행동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어른들의 사회생활에는 물론, 학생들의 성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런 이해를 돕는 좋은 책으로 '털없는 원숭이'를 꼽았는데, 이 책은 좀 더 '확실하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생물학적(분자생물학적, 생리학적)인 분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물질의 성질을 정말로 이해하는 데 원자 수준의 설명이 필요하듯이, 그냥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인간의 행동은 너무 복잡하고, 무규칙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자전쟁'이나 'DNA' 처럼 상식만 가지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개념이 그 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그 모든 현상이 일관성 있게 설명된다.

[과학] 기생충

기생충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기생충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회충, 요충과 같이 사람 몸 안에 살면서 양분을 가로채 살아가는 지렁이 비슷하게 생긴 동물일 것이다. 기생충의 ‘충’은 벌레라는 뜻이므로 기생충은 모두 작은 무척추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기생충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생물 또는 무생물일 수 있다(벌레가 아닐 때는 기생생물이나 기생체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어미 새로 하여금 자기의 알을 부화시키고 돌보게 하는데, 다른 새의 노력을 가로채 번식을 하는 것이므로 기생충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또, 식물 중에는 광합성을 하지 않고 근처에 자라는 버섯으로부터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는 ‘버섯만도 못한’ 것들이 있는데 이 역시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바이러스(독감 등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스스로를 복제할 수 없지만 다른 생물 세포의 복제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기 복제를 한다. 바이러스를 생물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논란이 되지만 회충이 사람에 기생하듯이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에 기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컴퓨터 바이러스는 실체가 없는 소프트웨어일 뿐이지만 다른 프로그램에게 돌아가야 할 메모리 공간과 중앙처리장치 실행 시간을 가로채 자기를 복제하고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므로 기생충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일반적으로 스스로는 살아갈 수 없고 다른 시스템에서 유용한 자원을 가로채어 자기를 위해 사용하면서 살아가는(유지, 확산해가는) 시스템을 기생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생충을 영어로는 parasite 라고 하는데, ‘식객(밥을 얻어먹는 자)’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기생충이 이용하는 대상, 즉 ‘숙주’는 일반적으로 기생충의 활동에 의해 해를 입는다. 자기 한 몸을 위해 사용해야 할 영양분이나 자원으로 기생충까지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생충의 해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생충이 자기 목적(유지, 확산)을 위해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기침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스스로를 더 잘 확산시키려고 우리 몸으로 하여금 그런 반응을 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봐야 한다(물론 바이러스에게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더욱 잘 퍼져 나가 오늘날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콜레라처럼 물을 통해 전염되는 병은 설사나 구토를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광견병의 경우는 더 무섭다. 광견병은 주로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었을 때 침을 통해 전염된다. 그러므로 광견병 바이러스는 침을 많이 흘리게 하는 동시에 화학적으로 ‘뇌를 조작하여’ 다른 동물을 물게 만든다. 보통 면역체계가 1-2주일 안에 광견병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그 짧은 기간을 이용해 자신을 다른 동물로 옮기게 하기 위해 숙주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람의 경우 일단 광견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중추신경(뇌, 척수)의 손상으로 100% 죽게 된다(그러나 감염된 후에라도 예방주사를 맞으면, 바이러스가 중추신경에 도달하기 전에 퇴치할 수 있다).

기생충들의 ‘악랄한’ 행태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반고환충의 유충은 송사리의 뇌 바깥에 기생하다가 그 송사리가 새에 잡아먹힐 때 새의 내장으로 들어가 성충이 된다. 따라서 송사리가 새에게 잘 잡아먹혀 줄수록 진반고환충이 더 잘 번식하게 된다. 그래서 유충은 송사리의 뇌 근처에서 화학물질을 분비, 송사리가 수면 근처에서 몸을 뒤집어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하는 경향을 보이도록 한다. 그 결과 송사리가 잡아먹힐 확률은 30배로 늘어나고 진반고환충이 더 쉽게 새의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의 입장에서는 진반고환충 덕분에 송사리를 훨씬 쉽게 잡을 수 있는 셈인데, 이것은 그 지역 생태계의 균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런가 하면 게에 기생하는 소낭충은 아예 숙주를 자신에게 봉사하는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소낭충은 게의 배 부분에 자리잡고 게의 살 속으로 촉수 비슷한 것을 뻗어 양분을 빨아들이는데, 숙주가 된 게는 소낭충의 화학적 조작에 의해 번식 능력이 없어지고 오로지 소낭충을 보호하고 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행동만 하게 된다. 이쯤 되면 ‘식객’이 집을 차지해 버린 셈이다. 암세포는 주인이었던 인체를 배신하고 그 시스템을 자기 자신의 유지, 확산을 위해 사용하여 마구 번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숙주인 인체에 커다란 해를 끼치는 섬뜩한 기생충이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생충의 생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칼 짐머(Carl Zimmer)의 책 「기생충 제국」(이석인 옮김, 도서출판 궁리, 2004)을 참고하기 바란다.

교묘한 방법으로 다른 생물의 몸 안으로 침입하고, 숙주의 면역체계를 바보로 만들며, 뇌를 화학적으로 조작하는 등의 창의적인, 어찌 보면 처절한 생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특이한 이웃에 대해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기생충은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잃어버린 퇴화된 생명체도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온 사악한 괴물도 아니다. 그들은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도록 적응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서 혹시 사람이 기생충과 비교되거나, 기생충이 사람과 비교되더라도 그것은 사람이나 기생충을 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이므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사실 기생충은 결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가진 시스템에서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만들었을 지하철 광고판 앞에 살짝 끼워 넣은 조잡한 전단지를 보라. 광고주와 광고 기획자, 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의 노력에 살짝 편승하는 그 기생충스러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속도로가 막힐 때 갓길을 질주하는 차들은 어떤가? 공공의 안전과 효율을 위해 여러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고속도로라는 시스템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솜씨가 기생충을 닮았다. 우리 사회를 안전하고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세금을 거두는 것인데 사회에서 받을 혜택은 모두 받으면서 그 세금을 가로채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탈세범이나 탐관오리들, 불법적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의 ‘면역체계’인 수사기관이나 세무기관을 구워삶아버리는 일부 재벌 기업들, 공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하면서 사회를 지배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 앞에서 소개한 기생충들 중에서 그들과 흡사하게 살아가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기생충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므로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다만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그런 일들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데 기생충에 대한 지식이 쓸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교육이라는 시스템은 어떨까? 여기서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법에 의해 통제되는 학교교육, 흔히 공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금이나 고속도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교육은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 공교육의 목적은 지식과 가치관을 다음 세대로 전달함으로써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동시에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르치는 수학이라는 학문은 수, 방정식, 함수, 도형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연구하는 것인데, 추상적인 개념은 많은 구체적인 것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 수의 계산 방법을 알아 놓으면 공깃돌의 개수를 헤아리는 데서부터 우주선을 설계하는 일까지 온갖 일에 사용할 수 있다) 수학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따라서 사회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데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둑 동호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바둑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하듯이, 기초가 되는 수학적 지식을 공유하는 것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그 진정한 일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공교육은 자기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소낭충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게처럼 엉망인 상태이다. 기본적으로 교육은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인데, 그러기는커녕 사회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시스템에 올라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교육의 방향을 엉뚱하게 틀어버리는 진반고환충이나 소낭충같은 인간들이 교육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기생충은 아마도 다음에 나열한 자들일 것이다.

- 권력(득표)을 위해 포퓰리즘적인 교육정책(예:고교평준화 해체, 교원평가)을 밀어붙이는 정치인
- 자기 자식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특혜를 요구하고 반칙을 일삼는 일부 권력자들
- 공공 예산 빼먹기 바쁜 일부 교장, 행정실장, 업자들(그 유명한, 관료+업자 카르텔)
- 손님을 끌기 위해 공교육 불신을 조장하는 사교육 업자들
- 무능, 부패, 나태하여 교육을 오히려 방해하면서 월급만 챙기는 일부 교직원, 교육공무원들

기생충이 생기는 것을 그 기생충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기생충의 침투를 허용하지 않도록 면역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존의 기생충을 하나씩 잡아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날이 올까 싶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해 가고 싶다.

[책] 우주의 기원 백뱅 -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제목: 우주의 기원 빅뱅
저자: 사이먼 싱(곽영직 역)
출판사: 영림 카디널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아서 하나의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사이먼 싱의 솜씨는 과학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두 번째 책인 <암호의 과학>에서도 그랬듯이 이 책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탐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연결지어 설명하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커다란 한 줄기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 이야기란,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 이것은 이론이 관찰 결과와 맞지 않아 위기에 처했을 때,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의 이론을 '땜질'하는 식으로 문제를 피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 '땜질'이 성공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이론이 받아들여짐으로써 과학적 지식은 발전하는 것이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빅뱅' 이론이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기까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과 그에 대항하는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은 몇 차례나 반복되며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 책은 그 역사를 흥미진진한 드라마와 같이 펼쳐 나가며 우주의 기원이라는 특정한 주제만이 아닌, 과학 전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해 줄 것이다.

2010년 6월 8일 화요일

[나의 이야기] 나를 만든 책들

제목: 코스모스(Cosmos)
저자: 칼 세이건
출판사: 주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지질, 천문) 등 모든 과학 분야를 아우르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교양과학서적이다. 세계적으로도 과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책이라고 알고 있다.

과학의 여러 가지 개념들을 소개하지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설명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외계' 를 설명하기 위해 지구와 지구의 역사, 은하계, 빅뱅 같은 것을 말하고, '생명체' 를 설명하기 위해 세포, 화학 반응, 원자, 전자 등을 말하는 식이다. 앞에서 나온 내용이 복선 역할을 해서 뒤에서 다시 사용되고 하기 때문에 소설책보다도 재미있게 읽었고, 사실 그 이후 몇 년간 10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과학에 빠져서 일반 소설 같은 것은 거의 안 읽었다.)

이 책 덕분에, 처음 읽었을 때 초등학교(당시 용어로 국민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이었던 내가 '상대성 이론', '진화론', '쿼크', 'SETI' 같은 말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나의 관심은 그런 것들로 향했다. 그 전에는 장래 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과학자' 라고 써내기는 했지만 과학이라는 것은 '마징가 Z'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정도로, 과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구체적인 과학의 내용을 알려 주었고, 나도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했다.

칼 세이건 자신이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 가서 '별(Stars)' 에 대한 책을 찾았더니 직원(사서인 듯)이 연예인 사진이 잔뜩 실린 책들을 가져다 주더라는 일화도 나와 있는데, 그것도 나 자신을 그와 동일시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

제목: 별의 물리(星の物理)
저자: 기다무라 마사도시
출판사: 전파과학사

나의 지식은 상당부분 <별의 물리>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집에 있던 백과사전(과목별로 된 학습백과사전이었음)의 '과학' 부분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고, 어떤 친구 집에 전집으로 된 '과학 학습 만화'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친구 집에 상당 기간 드나들면서 수십 권짜리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읽기도 하는 등으로 과학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중학생이 되니 영어 사전을 사야 한다길래 사전을 사려고 들른 동네 서점 맨 위 구석에 있던 볼품없는 작은 책에 <별의 물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펼쳐 드니 북극성이 짝별(연성 - 두 별이 서로를 돌고 있는 것)이라는 등 매우 구체적인 별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 같아서 사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한 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은 <코스모스> 같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에는 싣기 어려운 내용도 거침없이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밝고 유명한 별들(북극성, 처녀자리 스피카, 마차부자리 카펠라, 오리온자리 베텔기우스 등등)의 물리적 특성에 대해 나와 있었는데, '가리는 짝별(식연성)', '로슈 한계', '케페이드형 변광성', '메시에 목록' 같은 전문 용어들이 쉴새없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또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가는 것으로 봐서 분명 전문서적은 아니고 교양서적이었다.

작지만 굉장히 배울 것이 많았던 그 책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앞 표지에 쓰여 있는 내용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현대과학신서 115"

그러니까 이런 책이 적어도 114권이 더 있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2-3주에 한 번씩 주말에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종로서적'에 가서 현대과학신서 시리즈를 살펴 보고 그 중에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을 한 권, 두 권씩 사 오는 일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리즈로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블루백스' 도 사서 읽었다. 나중에는 다른 책들이나, 음반도 사게 되었다. 그런 일상은 대학에 가서까지 계속되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큰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책을 사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그 때 샀던 책의 제목을 몇 개만 말해 보면 <양자역학적 세계상>, <현대물리학 입문>, <상대론적 우주론> 이런 것이다. 하나같이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해설해 주는 훌륭한 책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지적인 충격과 감동은 말로써는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사실 코끼리의 다리도 아닌 발가락 정도에 불과함을 일찍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수학에 대해서는 그런 '선행학습'이 별로 없어서 대학에서 좀 헤맨 경험이 있다.)

===============================================================

제목: 교육의 목적과 난점
저자: 이홍우
출판사: 교육과학사

내가 교육에 대해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에서 감명을 받은 것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처음인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 동기들은 거의 모두 '교육철학' 이라는 과목을 수강했고 나는 부전공때문에 수강하지 못했다.
그 때 교수님이 추천한 책이라길래 사서 지하철로 통학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관점을 갖게 해 주었다.

그 전까지는 교육이란 지식을 전달하는 것, 학생이 잘 되게 해 주는 것 등등, 한마디로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이 책은 교육이 무엇인지(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교육이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은 무엇을 하기 위한 활동인가, 다시 말해 교육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목적' 이라는 말의 뜻을 분석하는데, 이런 것이 철학적 논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목적이 경제성장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은 교육과는 별개로 있는 것이며 교육을 그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외재적 목적).
그러나 교육의 목적이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교육이라는 말의 뜻 그 자체가 그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내재적 목적).

또한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의 중요성은 배운 다음에야만이 알 수 있고, 배우기 전에는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교육의 근본적인 난점(어려움)이다. 교육을 받아야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일단 교육 받도록 사람들을 유혹하는 거짓말일 뿐이지, 그것이 교육을 받는 진짜 목적(내재적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거짓 목적(외재적 목적)이 진짜 목적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런 식으로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몇 편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대부분 강연 원고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냥 죽 읽어나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 더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나중에, 이 책의 저자인 이홍우 교수가 번역한 교육학 책을 두 권 읽었는데 하나는 피터스(R.S.Peters)의 <윤리학과 교육>, 또 하나는 듀이(J. Dewey)의 <민주주의와 교육>이다. 피터스는 듀이에 대해 '상식에 학문이라는 옷을 입혔을 뿐' 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상반된 관점을 갖고 있다. 내가 두 책을 모두 읽어 봐도(이 두 책에 대한 이홍우의 번역은 완벽에 가깝다) 피터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분석철학(언어의 뜻을 분석하고 그것을 가지고 논증하는 방식)에 입각한 그의 이론 전개는 수학적인 증명과도 비슷해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이런 책들은 내가 교육이라는 것, 그리고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