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8일 화요일

[나의 이야기] 나를 만든 책들

제목: 코스모스(Cosmos)
저자: 칼 세이건
출판사: 주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지질, 천문) 등 모든 과학 분야를 아우르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교양과학서적이다. 세계적으로도 과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책이라고 알고 있다.

과학의 여러 가지 개념들을 소개하지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외계 생명체를 찾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설명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외계' 를 설명하기 위해 지구와 지구의 역사, 은하계, 빅뱅 같은 것을 말하고, '생명체' 를 설명하기 위해 세포, 화학 반응, 원자, 전자 등을 말하는 식이다. 앞에서 나온 내용이 복선 역할을 해서 뒤에서 다시 사용되고 하기 때문에 소설책보다도 재미있게 읽었고, 사실 그 이후 몇 년간 10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과학에 빠져서 일반 소설 같은 것은 거의 안 읽었다.)

이 책 덕분에, 처음 읽었을 때 초등학교(당시 용어로 국민학교) 3학년인가 4학년이었던 내가 '상대성 이론', '진화론', '쿼크', 'SETI' 같은 말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나의 관심은 그런 것들로 향했다. 그 전에는 장래 희망을 써내라고 하면 '과학자' 라고 써내기는 했지만 과학이라는 것은 '마징가 Z'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정도로, 과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구체적인 과학의 내용을 알려 주었고, 나도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했다.

칼 세이건 자신이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 가서 '별(Stars)' 에 대한 책을 찾았더니 직원(사서인 듯)이 연예인 사진이 잔뜩 실린 책들을 가져다 주더라는 일화도 나와 있는데, 그것도 나 자신을 그와 동일시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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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별의 물리(星の物理)
저자: 기다무라 마사도시
출판사: 전파과학사

나의 지식은 상당부분 <별의 물리>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집에 있던 백과사전(과목별로 된 학습백과사전이었음)의 '과학' 부분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고, 어떤 친구 집에 전집으로 된 '과학 학습 만화'가 있는 것을 알고 그 친구 집에 상당 기간 드나들면서 수십 권짜리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읽기도 하는 등으로 과학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중학생이 되니 영어 사전을 사야 한다길래 사전을 사려고 들른 동네 서점 맨 위 구석에 있던 볼품없는 작은 책에 <별의 물리>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펼쳐 드니 북극성이 짝별(연성 - 두 별이 서로를 돌고 있는 것)이라는 등 매우 구체적인 별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 같아서 사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한 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은 <코스모스> 같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에는 싣기 어려운 내용도 거침없이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밝고 유명한 별들(북극성, 처녀자리 스피카, 마차부자리 카펠라, 오리온자리 베텔기우스 등등)의 물리적 특성에 대해 나와 있었는데, '가리는 짝별(식연성)', '로슈 한계', '케페이드형 변광성', '메시에 목록' 같은 전문 용어들이 쉴새없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을 또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가는 것으로 봐서 분명 전문서적은 아니고 교양서적이었다.

작지만 굉장히 배울 것이 많았던 그 책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앞 표지에 쓰여 있는 내용은 나를 더 놀라게 했다.

"현대과학신서 115"

그러니까 이런 책이 적어도 114권이 더 있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2-3주에 한 번씩 주말에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종로서적'에 가서 현대과학신서 시리즈를 살펴 보고 그 중에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을 한 권, 두 권씩 사 오는 일을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리즈로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블루백스' 도 사서 읽었다. 나중에는 다른 책들이나, 음반도 사게 되었다. 그런 일상은 대학에 가서까지 계속되었는데, 나에게는 그런 큰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책을 사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그 때 샀던 책의 제목을 몇 개만 말해 보면 <양자역학적 세계상>, <현대물리학 입문>, <상대론적 우주론> 이런 것이다. 하나같이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해설해 주는 훌륭한 책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지적인 충격과 감동은 말로써는 다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덕분에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사실 코끼리의 다리도 아닌 발가락 정도에 불과함을 일찍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수학에 대해서는 그런 '선행학습'이 별로 없어서 대학에서 좀 헤맨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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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육의 목적과 난점
저자: 이홍우
출판사: 교육과학사

내가 교육에 대해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에서 감명을 받은 것은 이 책을 읽었을 때가 처음인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같은 과 동기들은 거의 모두 '교육철학' 이라는 과목을 수강했고 나는 부전공때문에 수강하지 못했다.
그 때 교수님이 추천한 책이라길래 사서 지하철로 통학하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나의 관점을 갖게 해 주었다.

그 전까지는 교육이란 지식을 전달하는 것, 학생이 잘 되게 해 주는 것 등등, 한마디로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이 책은 교육이 무엇인지(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교육이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은 무엇을 하기 위한 활동인가, 다시 말해 교육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목적' 이라는 말의 뜻을 분석하는데, 이런 것이 철학적 논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의 목적이 경제성장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은 교육과는 별개로 있는 것이며 교육을 그 수단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외재적 목적).
그러나 교육의 목적이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교육이라는 말의 뜻 그 자체가 그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내재적 목적).

또한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의 중요성은 배운 다음에야만이 알 수 있고, 배우기 전에는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교육의 근본적인 난점(어려움)이다. 교육을 받아야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일단 교육 받도록 사람들을 유혹하는 거짓말일 뿐이지, 그것이 교육을 받는 진짜 목적(내재적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거짓 목적(외재적 목적)이 진짜 목적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런 식으로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몇 편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대부분 강연 원고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냥 죽 읽어나가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 더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나중에, 이 책의 저자인 이홍우 교수가 번역한 교육학 책을 두 권 읽었는데 하나는 피터스(R.S.Peters)의 <윤리학과 교육>, 또 하나는 듀이(J. Dewey)의 <민주주의와 교육>이다. 피터스는 듀이에 대해 '상식에 학문이라는 옷을 입혔을 뿐' 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로 상반된 관점을 갖고 있다. 내가 두 책을 모두 읽어 봐도(이 두 책에 대한 이홍우의 번역은 완벽에 가깝다) 피터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분석철학(언어의 뜻을 분석하고 그것을 가지고 논증하는 방식)에 입각한 그의 이론 전개는 수학적인 증명과도 비슷해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이런 책들은 내가 교육이라는 것, 그리고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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