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의 자동항법장치 역할을 해서는 안되며 자녀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 수능시험 후나 대학입학 후 갑자기 자동항법장치를 끄고 자녀의 자유의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로 부모나 자녀 모두에게 재앙이다. 아니, 사실은 태어나서부터 십수년간 자동항법장치 역할을 자임하는 부모 자체가 재앙이다. 부모의 역할은 '생명유지장치' 정도에 그쳐야 한다. 조종사는 어디까지나 그 학생 자신이다. 교사로 말하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학생이 어디로 갈지 판단할 수 있게 도와 주는 '지도' 정도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 이상의 간섭과 통제와 강요는... 다시 말하지만 재앙이다.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1922 - )의, 자서전인지 소설인지 알쏭달쏭한 작품 '타임퀘이크(Timequake, 1997)'에서, 우주적인 원인에 의해 시간이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사건(타임퀘이크)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 10년을 기억하고 있지만, 자기의 의지와 관계 없이 모든 일들은 정확히 똑같이 반복된다. 사람들은 처음 몇 시간동안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려고 시도하지만 소용이 없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알면서도 다시 사고를 당하고, 자살한 사람은 다시 자살한다. 소설가는 같은 소설을 다시 쓴다. 모든 사람들, 우주 전체가 마치 자동항법장치에 맡겨진 것처럼 알아서 움직인다. 다시 10년이 지나서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냥 자연스럽게 시간이 이어졌을까? 그렇지 않다. 자유의지를 사용하는 것을 오래 전에 포기하고 자동 인형처럼 움직이는 데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은 갑자기 자기 행동을 자기가 통제해야 하는 상태가 돌아오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한 상태로 있게 되었기 때문에, 걸어가던 사람들은 넘어지고, 동작을 멈춘 운전자들 때문에 자동차들은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충돌하고, 이착륙하던 비행기들이 추락해버리는 등 재난이 잇따라 일어난다. 사람들이 자유의지가 다시 작동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다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그렇지만(커트 보네거트의 다른 작품으로는 제5도살장, 고양이 요람, 갈라파고스 등이 있다), 이 이야기도 단순히 재미로만 쓴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내게는 지금 우리 학생들이 처한 상황이 겹쳐 떠오르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돈 잘 버는 직업을 얻는 영광(?)은 어려서부터 그 목표에 맞추어 삶 자체를 '미세조정'한 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부모들로서는 방황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하는 자식이 안타깝기도 할 것이고 한심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보다 못해 자식의 일거수 일투족을 컨트롤하는, 엄청난 희생을 한다. (사실은 '스스로 중요해지고 싶은 욕망'을 자식을 통해 대리 실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부모가 이기고, 어느새 부모의 조종을 받아들여 자동 인형처럼 살아가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 중에 대부분이 사춘기나 그 얼마 후에 파국을 맞고 부모 자식간의 단절,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지만 그런 방식이 성공(?)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부모가 돈이 많고 여유가 많은 경우 그만큼 촘촘히 감시하고 감독하고 간섭할 수 있으므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그래서? 명문대학 들어갔으니 이제 자동항법장치를 꺼도 될까? 아니면 대학 생활까지도 조종하다가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면 자동항법장치를 꺼도 될까? 부모가 스스로 간섭 (사실은 '조종')을 거두거나, 부모의 죽음이나 가정의 파탄 등에 의해 간섭이 거두어지는 순간, 타임퀘이크에서 벗어난 사람들처럼 그 자식(이제는 어른이지만)은 멍한 상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행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시행착오, 방황 같은 것은 낭비가 아니라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경험인 것이다.
다행히 청소년들은 본능적으로 간섭을 싫어하며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려고 하게 되어 있다. (포유류 동물들은 거의 다 그렇다.) 문제는 부모다. 자식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부모들이 많은 것이다. 부모의 역할, 가정의 역할은 자식이 성장해서 독립할 때까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것 이상이 될 필요가 없다. 그 역할이 끝나면 자기 인생을 즐기면 되지 않는가? 자기가 되고 싶었던 그 무엇이 되지 못했다고 자기의 인생을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정신의 문제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자식의 인생을 자기 것처럼 소유하고 처분하여 자기 대신 사회에서 그 무엇이 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죄악이 아닐런지?
이렇게 말하면 '내가 그 아이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희생을 했는데...' 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런 경우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만화의 한 장면이 꼭 생각난다. 버스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데 그 할머니가 계속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팔을 잡아끌며 앉으시라고 실갱이를 벌이다가 그 할머니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버린다. 그렇다. 자기가 누구를 위한다고 하는 일이 꼭 그 상대에게 좋은 일이 되라는 법이 없다. 어차피 자기 인생 책임지는 것은 자기다. '내가 그 아이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희생을 했는데...' 하는 말은, 그 아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들었다 놓았다 하고서는 자기는 희생한 사람이니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전 포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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